볼리비아 계엄령…시위대에 발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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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볼리비아 군과 경찰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반정부 시위대에 발포해 38명이 숨지고 91명이 부상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액화천연가스를 수출하기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에 반대하는 항의시위가 한달째 계속되자 볼리비아 정부는 이날 계엄령을 선포하고 탱크를 앞세운 병력 수천명을 시위진압에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수도 라파스 인근의 엘알토시에서 진압군이 시위대에 발포해 수십명이 사망했다는 것이다. 현지 인권단체들은 게엄령이 발동되기 전에도 10여명이 시위진압 과정에서 숨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은 이 나라의 풍부한 천연가스를 외국에 수출하면 연간 15억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며 메이저 석유회사가 참여하는 퍼시픽 LNG 컨소시엄이 파이프 라인의 건설 등에 60억달러를 투자하도록 했다.

그러나 시위대는 과거 국영기업의 매각처럼 이번에도 혜택은 정부 관계자와 외국 기업에만 돌아갈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관련법에 따르면 수익금 중 18%만이 볼리비아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위대는 먼저 볼리비아의 약 25만 가구에 가스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 수출에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친미 성향의 산체스 정부는 일련의 사유화 정책을 강행해 왔다.'빈곤퇴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과 해외 투자자들은 이를 환영했지만, '인구의 70%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라틴 아메리카 최대 빈민국'의 국민은 불만을 제기해 왔다.

또 페루가 아닌 칠레를 통해 수출한다는 계획도 문제다. 볼리비아는 1879년 칠레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해안지역을 모두 잃고 내륙국이 돼 칠레에 대한 반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산체스 대통령은 13일 액화천연가스 수출 계획을 연말까지 보류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엘알토시의 노조 지도자인 로베르토 데 라 크루스는 "우리는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체스 대통령의 마약근절 정책에 반발한 코카 잎 재배 농민들과 수송업계 노동자들도 반정부 시위에 합류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쿠데타가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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