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기적을 낳은 일꾼들(중)-외교로 물리친 공산권 『88』불참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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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올림픽의 일꾼들은 차가운 외풍을 이겨내기 위해 냉엄한 외교무대에서도 많은 땀을 흘렸다. 우여곡절끝에 유치가 결정된 서울올림픽은 소련의 LA올림픽불참선언과 북한의 방해공작 등으로 느닷없이 개최지변경 논쟁에 휩싸이고 만다.
소련은 84년5월7일 선수단의 신변보호를 이유로 LA올림픽불참을 발표했고 불가리아·베트남·라오스·체코·몽고 등이 이에 동조, 순식간에 공산권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여 80년 모스크바올림픽의 반신불수를 재연할 기미가 뚜렷해졌다.
이런 상황 속에 불꽃은 엉뚱한데로 튀고 있었다.
5월 12일 뉴욕타임스지는 무어논설위원이 쓴 사설을 통해 『올림픽이 더 이상 보이콧운동의 제물이 되도록 방치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88년 제24회 올림픽을 전쟁의 위험이 큰 서울로부터 다른 곳으로 바꿔야 한다』 고 주장, 파문을 일으켰다. 곧 이어 싱가포르주재 소련대사관참사관 알렉세이 페도로프가 『서울올림픽 참가문제는 상황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보이콧의 악순환으로 타격을 입은 올림픽운동을 되살리기 위해 그리스 영구개최안도 고려할만한 구상』이라고 부추겼다.
또 IOC 부위원장인 쿠마르(인도)가 뉴욕타임스지와의 회견에서 『IOC가 88올림픽개최장소를 중립국으로 변경할지도 모른다』는 발언을 했다.
SLOOC는 미·소의 해묵은 감정싸움의 잔향이 엉뚱하게 서울로 향한 것을 직감, 5월말 스위스로잔에서 열리는 IOC집행위원회가 중요한 고비가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아래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태우 SLOOC위원장은 이 위기를 넘기는 방법은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장소변경불가 천명밖에 없다고 판단, 담판을 짓기 위해 로잔으로 날아갔다.
노 위원장은 출국에 앞서 서울올림픽 유치활동으로 IOC위원들과 지면이 넓은 박종규 IOC위원후보·조상호 SLOOC부위원장, 김운룡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들을 먼저 파견, 개최지변경의 진의와 상황 등을 파악하고 IOC집행위원들의 협조를 구하도록 조처를 취했다.
정부는 정부대로 재외공관에 비상을 걸어 각국 NOC의 도움을 구하도록 조처했는데 특히 유병현 주미대사가 뉴욕타임스 등을 직접 방문, 한국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 문제가 더 이상 파급되지 않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노 위원장은 사마란치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서울올림픽이 장소가 변경될 경우 올림픽이 정치오염으로부터 영원히 탈피할 수 없을 것이며 I0C 위원장이 그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력한 어조로 설득, 사마란치의 흔들리던 마음을 되잡아놓는데 성공했다.
박IOC위원후보는 국제스포츠계의 거물인 다슬러 아디다스회장을 통해 IOC 집행위원들을, 김·조양씨는 코트디부아르의 기란두 IOC위원과 벨기에 멜로드왕자를 설득, 결국 IOC 집행위원회를 무사히 넘겼다.
이어 6월 동베를린에서 열린 제90차 IOC총회에 노 위원장을 비롯, 이영호 체육부장관이 참가해 파티를 열고 동구권국가들과 처음으로 적극적인 접촉을 벌여 호네커 당시 동독서기장으로부터 동독이 서울올림픽에 참가할 것이라는 언질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또 LA올림픽기간 중에는 조상호 SLOOC 부위원장과 최만립 올림픽위원회 명예총무가 아시아와 중동지역을, 박종규 IOC위원후보와 전상진 SLOOC 차장이 중남미와 아프리카를, 김운룡 세계태권도연맹총재가 유럽지역을 각각 맡아 치열한 스포츠외교를 벌였다.
이같은 결과로 IOC총회는 물론 ANOC(국가올림픽연합회) 등이 서울올림픽개최 지지를 만장일치 의결로 선언, 서울올림픽은 오히려 더 튼튼한 기반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TV방송권협상도 개최지 변경론 못지 않게 SLOOC를 곤혹스럽게 만든 일중의 하나.
전체수입의 절반정도를 TV중계료로 메우려는 SLOOC는 TV방송권으로 최소한 7억 달러를 올릴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세계최대시장인 미국TV들은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과의 시차를 이유로 비관적인 애드벌룬을 띄우기 시작했다.
미국의 3대TV사들은 시청자들의 최대관심종목인 육상· 수영· 복싱· 체조· 농구 등을 미국의 황금시간대에 맞춰 서울의 오전 중으로 경기시간을 변경해줄 것을 요구했다.
미주지역에서 5억 달러이상을 목표로 세웠던 SLOOC는 이 문제를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등 해당국제연맹과 협의했으나 시간대를 바꿀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아 진퇴양난의 궁지에 빠졌다.
조상호 부위원장, 김운룡 집행위원, 문동후 (현 층무처국장) 조정관은 6개월에 걸친 국제육련과의 줄다리기끝에 85년6월 시간조정에 합의, 미국TV와의 협상에 유리한 터전을 마련했다.
이영호 체육부장관과 김운룡 집행위원, 이하우 사무총장 등이 대표로 참석한 85년9월 로잔회담에서 3대TV사는 기대이하의 금액을 제시, SLOOC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CBS는 3억 달러를, ABC는 2억2천5백만 달러에 케이블TV매상에 따른 최고1억3천5백만 달러 추가를, 가장 적극적인 NBC가 현금 3억2천5백만 달러, 혹은 최소3억 달러 보장에 광고수익이 9억 달러를 초과할 경우 2억 달러 추가라는 두가지안을 각각 내놓았다. 그리고 더 이상의 양보를 거부했다.
협상의 이니셔티브를 잡지 못한 SL00C는 결국 10월 뉴욕에서의 2차 회담에서 NBC의 제2안을 받아들였다.
당시 국내여론은 「기대이하」의 액수로 타결한 SLOOC의 협상실패를 비판했고 이영호 장관의 퇴진으로까지 연결돼 나갔다. 그러나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후에 볼 때 이 TV방송권협상이 실패했다는 시각은 적절하지 않았다는 풀이도 있다. <임병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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