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PANY] 현대판 연금술사 플라스틱에 금빛 옷을 입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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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프로메인은 국내보다 해외에 더 알려진 중소 도금업체다. 이 회사 주요 거래처는 일본 굴지의 전자업체들이다. 지난달 일본 A사는 프린터용 인쇄회로기판(PCB)의 금 도금을, B사는 태양광 발전설비에 들어가는 석판 도금 과정을 이 회사에 맡겼다. 이 회사가 도금용 첨단 코팅용액(Au-AT)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첨단용액 제조법은 현재 국내 특허 출원 중이다.

플라스틱 기판에 그린 회로에 전류가 통하도록 하기 위해선 금 도금 과정은 필수. 이 용액을 사용하면 도금에 필요한 금 사용량을 최소 30%이상 줄일 수 있다. 각종 도금과 도장 과정에 사용되는 국내 금 사용량은 금액기준으로 연간 3조7000억원에 이른다. 2년 전 문을 열어 지난해 매출 13억원에 그친 프로메인이 올해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것도 그만큼 시장 전망이 밝기 때문이다.

이 회사 우홍식(41) 사장은 명지대 화학공학과 야간을 어렵게 졸업했다.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화학.물리 과목이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충남 청양에서 농사를 짓던 그의 집은 학비를 대기가 어려운 형편이었다. 1983년 1만원짜리 한 장을 들고 무작정 상경한 그의 첫 둥지는 서울 영등포의 한 갈비 집이었다. 그는 "주인만 알고 아무에게도 안 가르쳐 주는 갈비 양념 비법이 정말 궁금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에 여러 궂은 일을 했다. 신문.우유 배달을 하면서 학원비를 벌었고,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면서 대학을 다녔다. 아파트 청소를 해주는 조건으로 한 아파트의 지하실 한 켠을 얻어 잠자리를 해결했다. 수년간 고생을 해서 그런지 폐렴에 걸려 쓰러지기도 했다. 하지만 밤 잠 안 자고 일해도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견디기 어려워 자살도 기도했다.

89년에 어렵사리 직장을 구했다. PCB업체인 동양정밀에 입사해 고교시절 그렇게 해보고 싶던 화학실험을 원없이 했다고 한다. 전공을 살릴 기회를 준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회사에 떼를 써 연구소에서 석.박사들과 함께 일했다. 낮에 막히는 문제가 있으면 대학 교수 집을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 물었다.

폴리머에 관심을 같게 된 것도 인쇄회로기판의 불량 원인을 분석하는 일을 하던 그때였다. 도금이 쉽게 벗겨지는 PCB와 그렇지 않은 PCB, 녹스는 도장과 그렇지 않은 도장의 차이는 어떤 폴리머가 포함된 방청제(녹스는 것을 방지하는 화학약품)를 쓰느냐에 좌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CB 제조사를 몇 군데 거치면서 독일의 선진 화학기술에 매료된 그는 95년 독립했다.'독일화학'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독일제 화공약품을 수입해 팔았다.

이때 그의 거래처에서 일하던 독일 엔지니어가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고 이는 그의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미국의 화학자 앨런 맥더미드가 이와 관련한 이론을 정립해 노벨화학상을 받은 것이 5년 뒤의 일이다. 그는 온갖 화학물질을 분해하고 섞기를 10년간 거듭한 끝에 전도성 나노폴리머를 표면처리에 응용하는 방법을 찾았다. 전도성 도금용액을 개발한 것이다. 당시 실험실이나 마찬가지였던 우 사장의 집은 늘 화학약품 냄새로 진동했다.

지난달 프로메인은 원군을 얻었다. 삼성전자 등에 LCD 모듈 등을 납품하는 코스닥 상장회사 시노펙스가 프로메인의 지분 50%를 인수했다. 시노펙스는 그동안 LCD 모듈의 핵심부품인 연성회로기판(FPCB) 도금 불량으로 고심했었다. 시노펙스의 손경익 부사장은 "대기업을 상대로 한 시노펙스의 영업력과 프로메인의 도금기술력이 결합하면 두 회사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장혁 기자 , 사진=정지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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