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지중해서 「화해의 돛」올렸다|몰타 미·소 정상회담 무슨 얘기 오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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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과 소련은 3일 최소한 선언적으로라도 동서냉전의 종식을 공식적으로 공표했다. 격랑의 지중해 해상에서 이틀간 정상회담을 가진 부시와 고르바초프는 이날 폐막회견에서 군축 등 주요 현안에 관해 아무런 합의를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이상 두 나라가 적이 아님을 선언, 양국 대립관계가 더 이상 국제정치를 가름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세계는 냉전의 기원을 떠나 새로운 기원으로 들어섰음을 우리 두 사람 모두 언명했다』는 고르바초프의 말은 주목할만하다.
이와 관련, 부시는 폐막성명을 통해 『미소관계 개선은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지만 긍정적 국제변화의 도구도 된다』면서 『두 나라 관계가 개선되면 세상에서 해결에 도움이 안될 문제가 사실상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유럽변화에 대해 미소가 안정 저해요소로 작용하지 않겠다는 서약이기도 하지만 미소의 역할과 권위를 환기시키는 양면적인 발언으로 풀이된다.
동구개혁은 누구도 제어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급격한 단계에 들어간데다가 불안정의 잠재요소가 크기 때문에 양국은 이에 간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상호 확인한 것이다.
남은 것은 독일 통일문제와 나토 및 바르샤바 군사동맹체제의 장래문제이며 회담은 이 부문에 상당한 비중의 토론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통독문제에 관해 고르바초프는 회담 후 회견에서 반대의사를 명백히 밝혔다. 그는 이 문제와 관련해 『변화과정에 대한 가속은 그 과정의 저해를 초래함을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고 말했다.
통독은 미소가 모두 바라지 않는 사항이다. 미소가 각기 서독과 동독에 군사적 잠재력을 유지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재의 국경을 서독이 장래에도 인정하기 전에는 통일문제를 거론조차 않겠다는 입장인 소련은 명분상 중립, 비군사화 유럽을 통독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부시도 통독과 유럽중립을 맞바꿀 수 없다고 주장, 통일된 독일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편이어야 할 것이라고 응수해 왔다.
동구민주화와 동서긴장완화가 종국적으로 제기하게 될 양측 군사동맹체제의 장래에 관해 엄격히 따져 양국은 아직 정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단계다. 부시는 그 동안 소련 안보이익을 저해할 생각이 없다며 바르샤바체제에 대한 도전을 삼가왔었다. 군사동맹문제와 관련, 고르바초프는 이번 회담에서 양 군사동맹을 우선은 「정치적 군사동맹」으로, 궁극적으로는 「정치동맹」으로 전환시킬 것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수사와 달리 고르바초프가 더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전후 유럽국경의 지속문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회담은 미리 조정된 공식의제는 없었지만 이 같은 체제문제와 아울러 군축, 양국경제협력 등 크게 세 가지가 주요안건 이었다. 그러나 군축 등의 현안에 관해서는 구체적 합의유무가 두 사람에게 있어 동구문제만큼 화급을 요하는 사항은 아니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회담에서 재래무기 삭감 폭 확대 외에도 지중해 등의 해군력 축소, 수중발사 크루즈미사일 감축 등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기는 했으나 미국은 서구동맹과 협의 없이 군축 등 유럽안보사항을 결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해왔기 때문에 일단 내년 6월의 정상회담, 그리고 이에 앞서 1월 외상회담 일정을 확정하는 선에서 앞으로의 타협안을 위한 기반마련에 그쳤다.
부시는 소 소비자 불만이 완화되지 않으면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반동이 불가피 할 것이라는 판단 위에서 소 경제난 해결문제를 고르바초프와 협의, 지원용의를 밝혔다.
회담은 당초 예상대로 엘살바도르 좌파반군에 대한 소련무기 공급문제를 놓고 가장 분명한 이견을 드러냈고 두 사람은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동구개혁의 역사적 전환에 대한 미소 강대국의 최초 공동반응이라 할 수 있는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로 보아 현안에 대한 이견은 두 지도자의 눈에 부차적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동구 등 최근의 국제질서변화의 뒷전에 처져 있는 인상을 벗어나지 못하고있던 부시로서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주도권을 다소나마 회복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표명하고 있다. <몰타=한남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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