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역풍 몰아칠수록 원칙 지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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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헌법재판소에서 '소수 의견'을 많이 냈던 것으로 유명한 권성(65)헌법재판관이 11일 법복을 벗었다.

2000년 9월 한나라당 추천으로 재판관이 된 지 5년 11개월 만이다.

윤영철 헌법재판소장 등 100여명의 헌재 관계자들이 참석한 퇴임식에서 권 재판관은 "국가의 진로에 때로는 그늘이 지고 역풍이 몰아치는 수도 있는데 이런 때일수록 더욱 원칙을 굳게 지켜 민주주의와 헌법을 수호하는 데 힘쓰지 않을 수 없다"며 헌재의 역할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또 "헌법재판관이기 앞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기본적 인권을 누리고 사람답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고 대한민국이 민주헌법을 가진 덕택"이라고도 했다.

최근 사법부 비리의혹 사건과 현 정치상황에 대한 견해가 궁금했다. 하지만 그는 "노장은 조용히 사라져야 한다"며 말을 아꼈다. "하고 싶은 말은 그동안 판결과 결정문을 통해 밝혀왔다"고만 했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조계의 금언을 퇴임시까지 지킨 것이다.

재임 기간 중 그는 수많은 소수의견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2001년 제기됐던 간통제에 대한 위헌 헌법소원 사건(합헌 결정)에서 그는 "간통은 윤리적 비난 대상일 뿐 죄가 아니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배우자와의 애정이 깨진 다음에도 결혼생활을 유지토록 강요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는 게 위헌 취지였다.

올 2월 지방자치단체장의 연임 4선 제한에 대한 헌법소원사건(합헌 결정)에서도 "유능한 인사를 계속 뽑을 주민의 권리가 침해됐다"는 위헌 의견을 밝혔다. 6월 신문법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신문사 경영과 소유에 관한 자료를 신고하도록 한 조항▶일간신문의 뉴스 통신, 방송사 경영 금지 조항에 대해 소수 의견인 위헌 의견을 냈다.

권 재판관은 가을 학기부터 6개월 간 미국의 한 대학에서 동양학을 강의할 예정이다. 그는 판결.결정문에 유교 경전과 한시를 자주 인용할 만큼 이 분야에 조예가 깊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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