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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공모제 상당수는 포장용 청와대 '배 째드리죠' 발언 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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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 압력을 거부해 '괘씸죄'로 경질됐다는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유진룡(사진) 전 문화부 차관. 그가 11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부 산하 기관장 외부 공모제의 충격적 실상을 밝혔다. (※는 독자의 이해를 위한 편집자 주)

-한국영상자료원의 경우 원장을 외부 공모로 선출하는데도 낙하산 인사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

"현 정부 들어 산하 기관장을 외부 공모로 선출하는 경우가 급증했지만 그중 상당수는 낙하산 인사를 공모인 것처럼 포장한 것으로 보면 된다. 외부 공모란 지원자를 접수한 뒤 추천위원회에서 서류.면접 심사를 통해 2~3명의 복수 후보를 추천하고 임명권자가 그중 한 명을 낙점하는 제도다. 하지만 실상은 복수 후보 속에 자기들이 미는 인사를 청탁.압력을 통해 끼워넣게 한 뒤 그 사람을 낙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렇더라도 자격이 있는 사람을 임명하면 별문제 없는 것 아닌가.

"낙하산 인사는 '급'이 안 되는 사람, 해당 업무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을 끼워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상자료원장 1차 공모가 무산된 것도 청와대에서 청탁한 정치 쪽 인물이 복수 후보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에서 모든 후보를 리젝트(거부)했다. 해당 인물은 자격 부족으로 탈락했다."(※영상자료원은 이효인 원장의 임기 만료에 맞춰 6월 15~29일 신임 원장을 공모한 뒤 심사를 거쳐 3명의 후보를 문화부에 추천했다. 그러나 문화부는 "인사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며 영상자료원에 재공모를 요구했다.)

-아리랑TV 부사장 자리에 대한 인사청탁을 거부하니까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전화를 걸어와 "(유 차관님) 배를 째 달라는 말씀이시죠. 예, 째 드리죠"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인가.

"모두 사실이다."

-그 관계자는 누구인가.

"홍보수석실 핵심 참모 중 한 사람이다. 누구인지는 나중에 밝히겠다."

-인사 청탁은 어떤 사람들이 했는가.

"아리랑TV 부사장 자리 등을 나에게 직접 청탁한 사람은 이백만 홍보수석, 양정철 홍보기획비서관 등이다. 그래서 나는 이 수석을 따로 만나 '이건 정말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짓을 더는 하지 말든가 나를 자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나를 잘랐다."

-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 이임사에서 "조용히 떠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참고 가려 합니다"고 밝혔었다. 심경변화를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가.

"나에 대한 음해 공작이 진행돼 참기 어려웠다. 이백만 홍보수석과 국정홍보처가 나서서 일부 언론 매체에 선전을 하고 다녔다. '유 차관은 비리가 포착돼서 공직기강 조사까지 받았다. 비리가 있는 데다 김명곤 장관과 사이가 안 좋아 자르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해당 언론사 세 곳에서 내게 확인취재를 해와서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다. 비리는 물론이고 장관과의 불화설도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청와대의 공직기강 조사를 받은 것은 사실 아닌가.

"6월 말~7월 초에 한번 받고 최근에 보강조사까지 받았다. 낙하산 인사에 협조하지 않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나는 항변했다. '말도 안 되는 인물을 청탁한 사람이 잘못이냐, 거절한 사람이 잘못이냐.' 그랬더니 조사관이 내게 미안해 하더라."

-김명곤 장관 정책보좌관도 '386 낙하산 인사'라서 문제가 있었다던데.

"공직기강에서 정식으로 조사받은 항목 중에는 그 문제도 있었다. 당초 김명곤 장관이 시키려 했던 인물은 따로 있었다. 그런데 4월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 행정관을 하던 사람을 시키라고 압력을 넣었다. 밀고 당기고 하다 보니 임명이 그로부터 두 달 늦어졌다(※장관은 2월 5일 취임했는데 보좌관은 5월 22일에야 임명됐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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