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불교의 인과경에 아귀와 천신의 얘기가 나온다.
옛날 한 나그네가 길을 잘못 들어 심산유곡을 헤매고 있는데 어디선가 『사람 살리라』는 비명을 듣게 된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 괴물이 사람을 죽여 놓고 그 시체에 매질을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나그네가 용기를 내어 괴물에게 물었다. 『네가 무엇인지는 모르나 사람을 죽였으면 그만이지 매질은 왜하고 있느냐』
그러자 그 괴물이 대답했다. 『마침 잘 왔소. 앞에 있는 이 시체는 전생에 사람으로 있을 때 내가 끌고 다니던 내 육신이었소. 그런데 이 육신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화목하고 친구에게 신의를 지키고 여러 사람에게 선행을 했더라면 내가 죽어서 이처럼 아귀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오. 그래서 내 육신에 지금 분풀이를 하고 있는 중이오』
나그네는 그 곳을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니 이번에는 어디선가 아름다운 풍악소리와 함께 향냄새가 진동했다. 가까이 가보니 한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금으로 만든 관 앞에 온갖 꽃과 제물을 차려놓고 수없이 절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그네는 신선에게 물었다. 『조부모나 부모님의 관입니까』 『아니오. 이 관속의 사람은 전생의 내 육신이오. 내가 인간으로 있을 때 이 육신은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처자를 사랑하며 성현을 숭배했소. 그 공덕으로 내가 신선이 되었으니 그 은혜를 이렇게 갚고 있는 것이오』
불교에는 삼세인과가 있다. 전생에 지은 업은 금생에 받고 금생에 지은 업은 내생 또는 내후생에 받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선업을 지으면 선보를 받고 악업을 지으면 악보를 받는다는 것이다.
요즘 도하의 화제는 온통 백담사에 쏠리고 있다. 1년만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나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의 언동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측은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아직도 반성을 덜 한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반응이야 어떻든 그의 마음이 그의 말과 같이 아직도 편안하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긴 불법과의 만남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