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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두서 자화상' 비밀 한 겹 벗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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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공중에 얼굴만 달랑 떠 있는 이 초상화, 한 번 보면 잊기 어렵다. 보는 이를 꿰뚫는 눈빛에 날카로운 콧날이며 일어선 수염이 호랑이 상이다. 입을 열면 강직한 바른 소리가 쩌렁쩌렁 세상을 울릴듯하다. 국보 240호 '윤두서 자화상'이다. 조선시대 선비화가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는 이 한 점으로 한국 초상화 역사의 중심에 섰다. 공재는 당쟁이 휩쓴 사대부 사회를 버리고 고향인 전남 해남으로 내려가 평생 학문과 예술에 묻혀 대쪽같은 삶을 보낸 선비. 스스로 그렸다 해도 외형 묘사와 내면 표출이 이렇듯 잘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싶다.

걸작이라도 의문은 남는다. 공재는 왜 몸뚱이를 일절 생략했을까. 귀를 없앤 까닭은 무엇일까. 혹시 미완성이었을까. 한국미술사에서 일종의 수수께끼로 내려오던 '윤두서 자화상'의 비밀이 일부 풀렸다.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의 이수미 학예연구관과 유물관리부 보존과학실팀(천주현 서화보존처리 담당, 유혜선 문화재분석 담당, 박학수 금속보존처리 담당)의 학제간 협력연구가 올린 성과다. 4명의 연구관은 지난해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개관 특별전에 나온 '윤두서 자화상'을 몇 가지 과학 조사로 분석했다. 윤씨 종가가 보관해온 '윤두서 자화상'이 현미경, X선 투과 촬영, 적외선, X선 형광분석법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결과는 우수한 완성품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보존 과정에서 사라진 부문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세밀한 표현 기법이 화면 속에 숨어 있었다. 생략한 것으로 짐작했던 귀는 X선 조사와 X선 형광분석기를 이용한 안료 분석을 해보니 명확하게 그려져 있었다. 얼굴의 다른 부분에 비해 왜소하지만 붉은 선으로 분명히 표현됐다. 몸체도 적외선 촬영을 통하자 육안으로 보기 힘든 몸체의 옷깃과 옷 주름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선명한 채색 사실을 알아낸 점도 큰 성과다.

이번 조사에서 아쉬운 점은 액자로 배접한 표구 상태라서 그림의 뒷면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몸체가 사라진 까닭에 대해 오주석, 이태호 교수 등 몇몇 미술사학자가 내세운 가설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수미 학예연구관은 "앞으로 배접지를 떼어볼 수 있는 자연스런 계기가 생긴다면 훨씬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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