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생각은

워크아웃 이용자에 금융지원 확대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금융채무 불이행자에서 벗어난 채무자가 약 60만 명에 이른다. 채무자의 상환 여력을 감안한 채무조정과 실직자 취업알선, 신용관리교육 등 입체적 지원의 효과라고 본다. 특히 2002년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워크아웃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개인채무자 구제 제도는 올 4월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외견상 시스템이 구축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많은 금융채무 불이행자를 효율적으로 구제하기 위해선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개인 워크아웃 이용자에 대한 금융지원이 절실하다. 개인 워크아웃 확정자의 약 82%가 월소득 150만원 이하의 저소득층이다. 사회 경제적 취약계층인 이들은 실직.질병.사고 등에 노출될 위험이 크지만 여전히 제도권 금융에서 소외돼 있어 작은 어려움에도 자구 노력이 물거품 되기 쉽다. 재기 의지가 강한 사람들에게는 긴급 생활안정자금 등 소액 자금이 적기에 제공되면 일시적인 가계수지 악화로 인한 문제를 피할 수 있다. 영세 자영업자에게는 임차보증금.시설수리비.업종전환준비금 등이 지원돼야 새로운 소득창출 기회가 생긴다. 금융 소외자에 대한 소액 자금 지원은 최근 활발하게 논의되는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와 일맥상통한다.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저리 자금 지원은 일종의 대안적 금융이며, 시장경제적 논리로 움직이는 제도권 금융기관이 취급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위한 재원 확보가 시급하다.

둘째, 성실했지만 불운한 과중채무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화돼야 한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땀 흘리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 사회는 아직 냉담하다. 다소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과거에 신용불량자였다는 사실만으로 취업에 불이익을 받거나 직장 근무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많다. 성공적으로 개인 워크아웃을 졸업했음에도 제도권 금융기관으로부터 신용거래에 많은 제약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건강한 경제주체로 복귀하려는 이들의 노력이 과소평가돼선 안 된다. 오히려 이들의 자신감 회복에 실질적인 도움을 줘야 한다. 이런 점에서 최근 경기도가 신용회복위원회와 공동 시행한 '채용 장려금 지원사업'은 성공적인 지원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경기도가 개인 워크아웃 확정자를 채용한 기업에 채용장려금을 지급하고, 대상 근로자에게 교통비를 지급한 결과 638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인채무자 구제에 손잡고 나서면 효과가 큰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셋째, 그동안 양적인 성과가 우선시되던 개인채무자 구제 제도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채무자의 경제적 회생 기회 제공'과 '도덕적 해이 차단'이란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우리 사회와 경제가 용인할 수 있는 합리적 균형점을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파산 신청 전에 채무조정을 거치도록 하는 사전조정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채무자에 대해 가장 관대하다는 미국이 1996년 이후 낮은 실업률과 경제호황 속에서도 파산신청자가 계속 늘자 지난해 4월 파산법을 개정해 신용상담기구에서 사전 신용상담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등 파산 신청 요건을 강화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결론적으로 개인채무자 구제 제도는 경제적으로 회생하려는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특히 금융 소외계층에 대한 소액 자금 지원은 개인에게는 가뭄 끝의 단비와 같고, 사회적으로는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한시도 미룰 수 없다.

신의용 신용회복위원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