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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 품질의 악법" 기립표결로 상임위 넘은 민주당의 언론재갈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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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언론 말살, 언론 장악”이라는 야당 반발을 뚫고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단독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회의할 때마다 조항이 바뀌었다. 자구가 불명확한 최하 품질의 악법”(이달곤 의원)이라고 반발했지만 가결을 막지 못했다. “입법 독재” 비판에 직면한 민주당은 한술 더 떠 “국민의힘이 국회 폭력을 재현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19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21.8.19 임현동 기자

19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21.8.19 임현동 기자

“여기가 북한이냐” 반발 속 기립 표결

김기현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 40여명의 집단 저항 속 강행된 이날 표결 현장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민주당 소속 도종환 문체위원장은 회의 개의 2시간만인 오후 1시 48분 “논의가 공전되고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 표결 요청이 있다”며 의결 절차에 돌입했다. 개정안의 내용과 처리 절차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한창인 때였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위원장석에 몰려가 “왜 표결에 대한 의견은 묻지 않느냐”(배현진), “여기가 북한이냐, 평양이냐”(김도읍), “언론말살이다”(최형두) 라고 소리쳤지만 도 위원장은 밀어부쳤다. 그가 “(법률안) 검토를 심도있게 진행하였으므로…”라고 말한 순간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이 뒤엉켜 위원장석 마이크를 밀쳐내기도 했다.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2021.8.19 임현동 기자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시키려는 도종환 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2021.8.19 임현동 기자

새 마이크를 요청해 받아든 도 위원장은 “마이크는 (터치)하시면 안 된다”더니 “찬성하는 의원은 기립해 달라”고 소리쳤다.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도 위원장 지시를 기다리던 민주당 의원들이 일제히 오른손을 들어 찬성 의사를 밝혔다.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은 이들보다 먼저 일어나 일찍이 손을 들고 서있었다.

“세상에 말이 되느냐!”, “부끄럽다!”는 야당의 외침을 뚫고 도 위원장은 “재석 16인 중 찬성 9명으로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라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그는 잠시 뒤 산회를 알리면서 자신을 둘러싼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특히 야당 의원님들 수고 많으셨다. 야당 의원님들 고생 많으셨다”고 말했다.

“국회법 모르나” 실랑이도

제1야당의 막판 저항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표결 직후 기자들에게 “(국제 기자단체인) 국경없는 기자회 홈페이지에는 언론 자유를 제약하는 나라 수반들의 얼굴이 올라와 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 얼굴이 곧 올라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 시작 30분 전부터 이준석 대표와 김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지도부는 문체위 회의장 앞에서 의원들과 함께 “언론재갈, 진실 은폐”, “협치 파괴, 입법 독재” 등의 구호를 외쳤다.

19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도종환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1.8.19 임현동 기자

19일 오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실에서 도종환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2021.8.19 임현동 기자

마이크를 잡은 김 원내대표는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 60개국 1만5000여 신문이 가입된 세계신문협회에서도 이런 언론재갈법은 절대 안된다고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면서 “어느 독재 정권에서도 이런 법을 통과시킨 적이 없는 폭거 중의 폭거”라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전날 안건조정위원회에 야당 몫으로 참여한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이 지나가자 일부 의원들이 “반성 좀 하라”, “김의겸이 야당이냐”고 소리치는 장면도 있었다. 국민의힘이 최후의 입법 저지 수단으로 요구한 안건조정위는 전날 민주당의 ‘김의겸 알박기 작전’에 한 시간만에 무력화됐다.

예정보다 40분가량 늦게 시작한 이날 회의에서는 도 위원장이 현장에서 국회법 조문과 과거 안건조정위 사례를 확인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안건조정위 구성시 위원장과 간사 간 협의를 해야 한다고 국회법에 돼 있다”고 반발하자 도 위원장은 기록을 들췄다.

▶도종환 위원장=20대~21대 자료가 있는데 안건조정위에 비교섭단체가 들어가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다.
▶이용 의원=국회법에 그렇게 돼 있나.
▶도 위원장=(책상 위를 보며) 57조2에 나와 있다.
▶배현진 의원=위원장이 지금 국회법을 확인하는 건 충격적이다.
▶도 위원장=지금 확인하는 게 아니고 보고 있는 거다. 누가 국회법을 모르나.
▶이달곤 의원=모르고 있구만!

“법적 조치” 여야 후폭풍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날 문체위 문턱을 넘은 개정안은 민주당이 야당 불참 속에 세 차례(7월 27일 법안소위·8월 18일 안건조정위·8월 19일 전체회의) 단독 의결, 졸속 심의한 결과물이다.

민주당은 언론계가 핵심 독소조항으로 지목해 삭제를 요구해 왔던 ‘제30조의2(허위·조작보도에 대한 특칙)’에서 언론사의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을 18일 밤 급히 뜯어 고쳤지만 ‘보복적이거나 반복적인 허위·조작보도로 피해를 가중시키는 경우’ 등은 손대지 않았다. ‘조작보도’‘보복적’등의 감정적이고 모호한 단어는 법률 요건으로 좀처럼 쓰이지 않는 용어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전체회의 후 기자들에게 “일부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을 (6개에서) 4개로 줄인 게 최종 개정안의 가장 큰 변화”라면서 “개정안의 여러 부분은 여전히 폭 넓은,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야당 의견을 수렴해 현장에서 악용될 소지를 줄였다”(이병훈 의원)고 변명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장 앞 복도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반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2021.8.19 임현동 기자

국민의힘 의원들이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장 앞 복도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반발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2021.8.19 임현동 기자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심사를 거쳐 오는 25일 본회의에 상정된다. 국민의힘에 문체위를 비롯한 7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넘겨주기 전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상임위 정상화, 협치 강화를 하기로 한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로 합의 정신을 깨는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여야 사이 기류는 급랭했다. 이날 오후 한병도 민주당 원내수석은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당은 모든 국회법에서 정한 절차를 지켰지만, 이 과정에서 국회 선진화법에 의해 사라진 줄 알았던 국회 폭력이 국민의힘에 의해 재현됐다”면서 “분명한 법적 조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주혜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하고, 언론 자유를 말살한 그 대가를 민주당은 반드시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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