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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언론징벌법’ 연기 아니라 폐기가 답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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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에서 두번째)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언론중재법 관련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마친 뒤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에서 두번째)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왼쪽에서 두번째)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언론중재법 관련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마친 뒤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연말까지 특위서 논의키로 했으나 명분 없어  

여당 강경파, 국회의장에 “특단 조치” 협박도

숱한 논란을 낳았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정기국회 내 처리가 사실상 무산됐다. 그제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 방침을 접고 국회에 언론미디어제도개선 특별위원회를 꾸려 연말까지 논의하기로 국민의힘과 합의했기 때문이다. 여러 독소조항 때문에 ‘언론재갈법’ ‘언론징벌법’으로 불린 해당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않고 연기된 것은 다행이다. 앞으로 여야는 동수로 참여하는 특위에서 언론제도 전반에 대한 개선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언론중재법의 독소조항은 여야 합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 폐기 수순에 돌입했다는 시각이 많다.

당초 민주당이 추진한 법안 자체에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당연하다. 징벌적 손해배상과 기사열람 차단 청구권 등 문제 조항에 대해 국내 모든 언론 단체는 물론이고 세계신문협회(WAN)와 국제언론인협회(IPI), 국경없는기자회 등 해외 언론 단체까지 잇따라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가 정부에 우려 서한을 보냈을 뿐만 아니라 정부 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도 헌법상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민주당이 뒤늦게 야당과 협상 과정에서 개정안을 내밀었지만 오히려 개악을 했다는 비판만 더해졌을 뿐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강행 처리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당내 강경파가 반발하며 보인 태도는 볼썽사납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본회의 상정을 미루면서 여야 합의를 주문하자 정청래 의원 등 30여 명은 “의원들의 뜻을 모아 특단의 조치를 하겠다”고 목청을 높였다. 국회법상 의장의 고유 권한임에도 ‘특단의 조치’ 운운하자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서 “귀를 의심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어제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페이스북에 “여당이 언론과 야당의 협박에 굴복한 것”이라는 주장을 올렸다. 당원 게시판 등에는 박 의장 등을 비난하는 글이 게재됐다.

민주당발 언론중재법은 정기국회와 특위가 끝난 후인 내년에도 재추진돼선 안 된다. 국제사회와 국제기구까지 반대하는 위헌적 조항이 담긴 만큼 처리 연기가 아니라 폐기하는 게 마땅하다. 야당에선 여당 대선후보가 선출된 이후 불씨가 살아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문재인 대통령도 “언론이나 시민단체, 국제사회에서 이런저런 문제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야당과 합의 없는 강행 처리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셈이다. 주무 장관인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정부가 할 일은 언론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마당에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무리수를 다시 두는 일은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