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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권의 언론정책, 조국사태 전후 돌변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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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7일 언론중재법을 심사하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8명, 국민의힘 7명, 열린민주당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은 지난 10일 도종환 문체위원장(사진 왼쪽)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 개의를 선언하는 모습이다. 임현동 기자

17일 언론중재법을 심사하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8명, 국민의힘 7명, 열린민주당 1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은 지난 10일 도종환 문체위원장(사진 왼쪽)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 개의를 선언하는 모습이다. 임현동 기자

17일 오전 10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를 소집한 더불어민주당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일괄 상정한다. 언론에 최대 5배까지의 배상 책임을 씌우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학계는 물론 해외 언론단체까지 ‘언론재갈법’이라고 비판하는 언론중재법을 이달 내 강행 처리하려는 수순이다.

민주당은 법사위 숙려기간(5일)을 고려해 늦어도 오는 19일까지 상임위 처리를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힘이 최장 90일 동안 쟁점 법안을 심의하는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더라도, 압도적인 수적 우위를 이용해 하루 이틀 만에 심사 절차를 종료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법안 내용을 원점에서 검토하기엔 이미 늦었다. 8월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사실상 배수진을 치고 언론중재법 강행 의지를 내비치는 것에 대해 정치권에선 “집권 때와는 180도 달라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탄핵 국면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 보도의 수혜를 입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당초 언론 자유의 신봉자처럼 행동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7년 대선 6일 전 페이스북에서 언론들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언급하며 “언론의 침묵은 국민의 신음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민주당 언론 정책 일지(2017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민주당 언론 정책 일지(2017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집권 초반만 해도 이런 인식은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유지되는 모양새였다. 2017년 7월 발표한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선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 신장”이 4번째 과제로 제시됐다. “2022년에 언론자유지수 30위권으로 신장”하겠다는 목표도 설정됐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현시점에서 문재인 정부 집권 여당의 언론정책은 ‘재갈 물리기’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런 변화에 대해 “지지층의 불만이 오래 누적됐다. 그중에서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강성 지지층 요구가 거세진 게 변화의 결정적 이유”라고 설명했다. 결국 정치적 필요에 의한 계산된 변심이란 뜻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1선에서 수호할 것처럼 약속하고 행동했던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최근 언론재갈법 논란 국면에서 계속 침묵만 지키고 있다.

드루킹 사건으로 불거진 파열음…‘조국 사태’가 결정타

돌이켜보면 집권 여당의 언론에 대한 불만은 집권 2년 차부터 서서히 나타났다. 2018년 4월 ‘드루킹 사건’이 발단이었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당시 민주당 의원)가 사건에 연루됐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추미애 당시 민주당 대표는 “김 의원 실명이 유출된 경위와 이를 왜곡·과장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서도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2018년 4월 16일 최고위원회의)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손혜원 전 의원 부동산 투기 의혹(2019년 1월)과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2019년 2월) 등 정부·여당 비판 보도가 나올 때마다 민주당 내부에선 언론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언론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가혹하다. 공정하지 않다”(한 친문 의원)는 요지였지만, 결과적으로 김 전 지사(2심), 손 전 의원(1심),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1심) 모두 법원에서 유죄를 받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019년 9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당시 조 전 장관이 기자들에게 당일 통보해 열린 간담회는 10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조국 사태'는 민주당 언론 정책의 변곡점이 됐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오종택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019년 9월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당시 조 전 장관이 기자들에게 당일 통보해 열린 간담회는 10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조국 사태'는 민주당 언론 정책의 변곡점이 됐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오종택 기자

2019년 8월부터 시작된 ‘조국 사태’는 사실상 민주당 언론 정책의 변곡점이 됐다. 입시 비리 등 언론이 제기한 의혹이 검찰 수사로 이어지자 민주당 의원들은 “수사 자료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후보자에게 흠집을 가했다”는 식의 주장을 펼쳤다. 이전에는 삼가던 언론에 대한 직접 비판도 쏟아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에선 “혼란의 한 축은 물론 언론”(표창원 전 의원), “언론에서 보도를 의도적으로, 악의적으로 하는 것 같다”(송기헌 의원)는 말까지 나왔다.

'언론 개혁'은 조국 전 장관의 지지자들이 주도한 서초동 촛불시위를 거치며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핵심 구호로 떠올랐다. 뉴스1

'언론 개혁'은 조국 전 장관의 지지자들이 주도한 서초동 촛불시위를 거치며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핵심 구호로 떠올랐다. 뉴스1

급기야 조국 전 장관 지지자들이 벌인 서초동 촛불시위에선 ‘언론 개혁’이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핵심 구호로 떠올랐다. 이때부터 민주당 의원의 휴대전화와 SNS마다 “조속히 언론 개혁에 착수하라”는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지지층 요구엔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도 화답했다. 서초동에서 마지막으로 열린 제9차 촛불시위(2019년 10월 12일) 연단에 오른 최민희 전 민주당 의원은 “언론은 권력 비판이 사명이라면서 왜 검찰은 비판하지 않느냐”고 물으며 “검찰개혁 다음은 언론개혁”이라고 외쳤다.

문재인 정부 민주당 언론 정책 일지(조국 사태 이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민주당 언론 정책 일지(조국 사태 이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런 서초동 촛불의 흐름은 이듬해 ‘매운맛 민주당’을 자처하는 열린민주당 창당으로 이어졌다. 열린민주당은 처음부터 검찰·언론 개혁을 핵심 가치로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김의겸 의원은 2020년 3월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출마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을 물어뜯거나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기사가 너무 많았다”며“언론개혁을 이루고 싶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현재 언론중재법을 심사하는 문체위원이 됐다.

’상생’으로 출발한 언론 입법…강경파 주도 ‘재갈법’ 선회

다만 민주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180석 압승을 거둔 뒤에도 한동안 ‘언론재갈법’보단 상생에 무게를 실었다. 언론 관계법 개정을 위해 지난해 10월 출범한 당내 태스크포스(TF) 이름부터 ’미디어상생TF’였다. 상대적으로 온건파로 분류되는 노웅래 TF단장은 출범 기자회견에서 “정치는 언론을 무시하고 폄훼하였으며, 언론은 제멋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이용해 자신의 입맛에 맞게 정치를 재단해왔다”며 “언론과 많이 소통하고 상호 신뢰관계 구축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 민주당 언론 정책 일지(거대 여당 출범 이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민주당 언론 정책 일지(거대 여당 출범 이후).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노웅래의 미디어상생TF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정보통신망법(윤영찬 의원안)을 통해 유튜브나 온라인 게시물의 거짓·불법 정보엔 최대 3배까지 배상 책임을 묻도록 했을 뿐 “언론에 징벌적 배상 책임을 물리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우세했다. 하지만 “180석으로 뭐 하냐”는 지지층 반발이 이어지면서, 당 지도부부터 입장이 바뀌었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악의적 보도와 가짜뉴스는 사회의 혼란과 불신을 확산시키는 반(反)사회적 범죄”라고 선언했고, 이후 민주당에서 언론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리는 논의가 본격화됐다.

당내 강경파로 꼽히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위원장을 맡아 '언론 재갈법' 입법을 주도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주체에 고위공직자를 제외하자는 민주당 문체위원들의 논의에 대해 "선출직 공직자도 피해를 제한적이나마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당내 강경파로 꼽히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위원장을 맡아 '언론 재갈법' 입법을 주도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주체에 고위공직자를 제외하자는 민주당 문체위원들의 논의에 대해 "선출직 공직자도 피해를 제한적이나마 구제받을 권리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재·보선 참패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사실상 좌초되자 5·2 전당대회에서 출범한 송영길 지도부는 언론 관계법 개정에 페달을 밟았다. 미디어상생TF는 미디어혁신특위로 돌변했고, 당내 강경파로 꼽히는 김용민 최고위원에게 위원장의 중책이 맡겨졌다. 특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언론중재법에 포함시키로 했고, 배상 액수도 당초 논의되던 3배에서 5배로 늘었다. 처음에 규제 대상으로 검토된 유튜브가 아닌 언론이 타깃이 됐다. 재·보선 참패의 해법을 지지층 규합에서 찾고, 언론개혁을 그 분노의 출구로 삼은 모양새다. 당 안팎에선 “김경수 전 경남지사와 조국 전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유죄 선고로 인한 지지층 달래기 카드가 필요했다”는 말도 나왔다.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여당은 법안 처리 시점을 더는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여기에도 정무적 고려가 깔려있다. 민주당 미디어혁신특위 소속 한 의원은 “이 법을 강행했을 때 당이 입는 타격보다, 법안 처리를 중지했을 때 지지층의 이탈이 더 치명적이다. 8월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털어놓았다. 처리를 늦출 경우 당 대선 후보에게 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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