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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재갈법 강행처리 포기한 與…윤건영·고민정도 신중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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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간 협상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냈던 더불어민주당이 29일 일단 그 발걸음을 멈췄다. 국제사회와 청와대의 우려 표출외에 당내 반발에까지 부닥치면서다. 여야 합의를 위해 지난 27일부터 사흘간 협상도 진행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 핵심 조항을 둘러싼 접점도 끝내 찾지 못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언론중재법 관련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마친 뒤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로 열린 언론중재법 관련 여야 원내대표 회동을 마친 뒤 합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결국 이날 오후 박병석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 후,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여야가) 언론미디어 제도 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는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특위에선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비롯해 신문법 개정안, 방송법 개정안 등 언론 관련 법안을 여야가 함께 논의하기로 했다. 구성원은 18인 여야 동수로 하기로 했고, 활동 기한은 오는 12월 31일로 정했다. 강행처리 대신 연말까지의 추가 협상을 선택한 것이다. 이로써 정기국회에서의 강행 처리 가능성은 사라졌다.

야당이 결사적으로 반대해온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관련 윤 원내대표는 “저희는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말했지만, 정치권에선 “단독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말도 나왔다. 향후 정국의 균형추가 국정감사와 대선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민주당 주도의 ‘입법 독주’가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文 “충분한 검토” 주문 뒤…친문 의원들 “여야 합의해야”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민주당에선 “오늘이 언론중재법 통과의 마지막 분수령”(민주당 최고위원회의)이라는 분위기였다. 송영길 대표도 이 회의에서 “여아가 충분히 논의했다. 합의가 안 되면 표결로 처리하는 게 민주주의 원리”라며 단독 표결을 시사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를 주장해 온 정청래 의원 등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소속 의원 33명은 법안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열었다. 이들은 “27일 본회의 처리 합의가 있었는데도 상정을 안 하는 것은 국회의장이 제 역할을 안 하는 것”이라며 박병석 의장을 겨냥했다.
또 “의장께서 상정을 계속 거부할 시에는 의원들의 뜻을 모아서 특단의 조치를 하겠다”는 엄포도 놨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하지만 이날 오후 열린 의원총회에선 강경론 대신 신중론이 대거 분출됐다. 전날 의원총회뒤엔 당 지도부가 “이견은 없었다”(한준호 원내대변인)고 브리핑 했지만, 이날은 의총 뒤 “20명 넘는 의원이 발언했다”(신현영 원내대변인)고 발표했을 정도로 격론이 오갔다.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이날 신중론을 편 의원들은 대체로 문재인 대통령과 가까운 의원들이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3일 “언론이나 시민단체, 국제사회에서 이런저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충분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며 언론중재법 처리에 신중론을 편 것이 영향을 미친 듯한 분위기였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민정 의원은 “저 역시 언론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받았지만, 언론중재법은 야당과 언론 등 사회적 합의를 이룬 뒤에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발언이 알려지면, 개혁 지지층으로부터 많은 문자를 받을 것으로 안다. 무섭기도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라고도 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출신인 윤건영 의원도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가해자인 보수 언론과 야당이 피해자처럼 비칠 수 있다. 멀리서 바라보자”는 취지로 말했다. 친문 홍영표 의원도 “4ㆍ7 재ㆍ보궐 선거에서 패배한 교훈을 다 잊었냐”고 했고, 청와대 민정비서관 출신인 김영배 최고위원은 차기 대선을 거론하며 “법안 처리를 정무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상태로 단독 처리를 하면 실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은 최근 여러 차례의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정무적 판단의 필요성을 주장해왔다고 한다.

다만 그동안 법안 처리를 주도해온 김용민ㆍ김승원 의원 등은 이날도 “야당과 충분한 협의를 했다. 국민과 한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강경론을 폈다. 일부 의원들도 “야당과 더 협의해봐야 어차피 달라질 것도 없다. 오늘 당장 본회의를 열어 단독으로라도 처리해야 한다”고 가세했다고 한다.

여당 내에서 신중론이 분출한 데엔 입법 독주에 대한 부담감과 ‘개혁 피로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수도권 초선 의원은 “상대방을 때려잡아야 할 악당으로 놓고 소위 '개혁'을 추진하는 건 우리에게도 마이너스 요소”라며 “대선을 생각하면 그런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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