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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중재법 수정 꼼수 부린 민주당…야당과 전문가 "위헌·개악"

중앙일보

입력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박정 국회 문체위 여당 간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언론사의 고의와 중과실에 따른 허위 조작 보도에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심의가 진행됐다. 임현동 기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박정 국회 문체위 여당 간사가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언론사의 고의와 중과실에 따른 허위 조작 보도에 최대 5배까지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도록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심의가 진행됐다. 임현동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1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두고 또 한차례 격돌했다. 민주당은 “양보했다”며 일부 수정안을 공개했지만 언론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여하는 법의 골자는 그대로 둔 내용이었다. 민주당 의원들이 표결 처리를 주장했지만, 국민의힘 측의 안건조정위 회부 요구를 도종환 문체위원장이 수용하면서 의결은 잠시 미뤄졌다.

與 “언론계 요구 수용”

민주당 간사인 박정 의원은 이날 오전 “그동안 언론단체들이 쭉 제기했던 내용들을 받아들였다”며 여당 측 수정안을 제시했다. 지난달 27일 법안소위에서 강행처리한 내용에 비해 언론자유 침해 요인 일부가 완화됐다.

고위공직자(대통령·국무총리·장관·국회의원·지자체장·지방의회 의원)와 대기업 및 그 관계자(주요 주주 및 임원)에겐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자격을 주지 않고,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침해행위’나 「부정청탁 금지법(김영란법)」위반 행위에 관한 보도 등은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에서 배제하겠다는 게 새로 반영된 내용이다. 열람차단을 청구받은 사실 자체를 인터넷 기사에 표시할 의무를 부여하는 조항과 매출액에 따라 손해배상의 하한선을 권고하는 등의 내용도 삭제했다. 야권은 물론 친여 성향의 언론 단체들에서도 쏟아져 온 “권력이 언론에 재갈을 물릴 수 있다”는 등의 지적을 의식한 결과다.

그러나 핵심 독소 조항으로 지적돼 온 언론사나 기자의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요건은 그대로 뒀다. ‘제목과 기사의 내용을 다르게 하는 경우’ 등 6가지 경우엔 기자나 언론사가 고의나 중과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만드는 조항이다.

전문가들 “위헌·무의미”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도종환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도종환 위원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이같은 수정에도 전문가들에게선 “위헌성은 여전하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언론자유 침해라는 법안의 본질을 바꾸지 못하는 수준의 조정이라는 이야기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는 “언론의 자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규정을 둘 때는 매우 명백하고 구체적인 규정이 있어야 하는데, 징벌적 손해배상의 요건 자체는 손보지 않은 채 적용 예외 대상 몇개 급조해 끼워넣었다”면서 “‘공적 인물의 비위’라는 것은 한정될 수도 없고 무한검증이 필요한 사안인데 이걸 ‘부정청탁, 뇌물 관련 보도는 예외’라는 식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위헌”이라고 말했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적 관점에서 보면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의 생명 같은 것”이라면서 “애초에 정치적 목적이 개입돼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으니 이를 무마하기 위해 추상적인 예외규정을 두는 자체가 언론 생태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성향 시민단체 오픈넷의 손지원 변호사도 “고의·중과실 추정이 핵심적 문제 조항”이라며 “여전히 소송 남발과 그에 따른 언론 위축을 막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위공직자 등을 청구 자격을 제한한 것을 두고도 “예를 들어 유력 정치인 측근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보도한 경우 등엔 소제기를 막을 방법이 없는 등 구멍이 많다”고 꼬집었다.

野 “붕어빵 찍듯 법 만드나”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달곤 야당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뉴스1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달곤 야당 간사가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반발이 거센 조항 일부만 짜깁듯 고친 민주당의 수정안에 대해 야당은 “법을 하루 만에 붕어빵 찍어내듯 만든다”(김승수 국민의힘 의원)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관련 전문학자와 기자들이 심도있게 들어봐야 한다. 내용이 추상적이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얼마나 두렵고 무서워서 권력형 비리를 덮으려고 안달인가. 독재시대에도 이런 국가는 없었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언론중재법 반대를 당론으로 정한 정의당은 이날 오전 언론 현업 4단체(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와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회견문에서 “자율 규제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민주당이)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지만 누구도 설명하고 있지 않다”면서 “고문과 죽음의 공포를 무릅쓰고 지켜온 언론 자유의 최대 수혜자인 민주당이 이제 언론 혐오를 부추기며 언론을 사회악으로 몰아가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고 비판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도종환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전체회의가 17일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도종환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하지만 민주당은 기존에 세운 ‘19일 상임위→24일 법사위→25일 본회의 의결’ 스케줄을 강행한다는 입장이다. 박정 의원은 “이 법만이 아니라 법안이 많이 밀려있다”면서 “어느 정도 속도를 내서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정안 제출하고 야당에 대안을 요구하는 등으로 명분을 쌓은 뒤 결국 강행 처리하겠다는 취지다.

여·야는 이날 회의 막판까지 국민의힘이 의결 저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요청한 안건조정위 구성을 두고 실랑이를 벌였다. 민주당보다 더 언론중재법 개정에 앞장 서 온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참여여부가 문제였다. 국민의힘측은 “(김 의원을) 여당 몫 조정위원으로 지정하는 게 맞다”(이달곤 의원)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비교섭단체 위원을 지정하는 관례를 유념해달라”(박정 의원)며 거부했다.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 요구로 안건조정위(6인)에 회부된 안건은 최대 90일의 심의 기간을 거치거나 조정위 재적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다시 상임위 전체회의로 넘어간다. 김 의원이 끼면 민주당은 안건조정위를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 도 위원장은 “내일(18일) 오전까지 안건조정위 구성을 위한 여야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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