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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물교회 악몽 준 탈레반 대변인···베일 벗고 마이크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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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 중인 탈레반 대변인 자비울라 무자히드. AP=연합뉴스

17일(현지시간) 기자회견 중인 탈레반 대변인 자비울라 무자히드. AP=연합뉴스

“탈레반의 입으로 행세하는 진짜 자비울라 무자히드는 모습을 드러낼 것인가.”

2011년 6월14일자 뉴욕타임스(NYT) 기사 첫머리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특파원 로드 놀랜드가 쓴 기사의 제목은 “탈레반의 목소리, 한 명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정도로 번역 가능하다. 지금도 카불에 주재하며 NYT의 아프간 지국장이기도 한 그는 17일(현지시간) 무릎을 쳤을 법하다. ‘진짜’ 자비울라 무자히드, 적어도 그렇게 주장하는 인물이 얼굴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심지어 카불 주재 언론사들을 모아놓고 생방송으로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미스테리 전략을 쓰던 탈레반의 진화다.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악수까지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악수까지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무자히드에 대해선 설이 분분했다. 탈레반은 아프간에 집권하면서 두 명의 이름을 대변인으로 내세웠다. 그 중 한 명인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한국과도 악연이 있다. 경기도 분당 샘물교회 배형규 목사를 살해했다고 발표한 게 그다. 2007년 7월 얘기다.

당시 배 목사를 포함한 20명의 샘물교회 소속 한국인들은 선교를 목적으로 아프간에 갔다가 탈레반에 납치됐다. 탈레반은 아프간에 주둔 중인 한국군의 철수와 인질 교환을 요구했다. 협상이 진행 중이던 7월 25일, 카리 유수프 아마디는 “아프간 정부가 우리 요구를 듣지 않았기에 (한국인) 남성 인질 1명을 총으로 쏴 죽였다”며 “앞으로도 우리 요구를 듣지 않을 경우 추가로 살해할 것”이라 협박했다. 실제로 탈레반은 배 목사에 이어 심성민 씨를 30일 살해했다. 나머지 인질은 이후 협상이 마무리 되면서 풀려났다.

2007년 탈레반 피랍 사태 당시 분당 샘물교회 사무실. 액자 속 인물이 배형규 목사다. 피살 뒤 영정사진. [중앙포토]

2007년 탈레반 피랍 사태 당시 분당 샘물교회 사무실. 액자 속 인물이 배형규 목사다. 피살 뒤 영정사진. [중앙포토]

탈레반은 필요할 경우 아마디와 무자히드를 앞세워 외신에 목소리를 전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무자히드가 거의 대변인 일을 도맡고, 아마디는 일선에선 물러난 분위기다. 그는 영미권 외신과의 인터뷰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 극히 꺼렸다. 2009년 첫 외신 인터뷰인 CNN 취재에선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뒷모습만 보이는 조건으로 응했다. 당시 CNN 인터뷰를 진행했던 닉 로버슨 기자는 “서른 살 또는 그보다 조금 정도 되어 보였고, 말랐지만 약해보이진 않았으며 키는 6피트(182cm) 정도였다”고 전했다.

그런 그가 17일, 외신 기자단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이런 식의 공개 기자회견을 한 것을 두고 외신에서 이례적이라고 표현하는 까닭이다. 한편, 기자단은 죄다 남성으로만 구성됐다. 탈레반이 여성의 사회활동을 금지한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무자히디는 기자회견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종료됐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이어 “(이슬람의) 샤리아 율법을 따르는 한도 내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며 여성의 취업과 교육을 부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교육권 등은 각국 헌법 및 유엔 헌장 등에서 기본권으로 인정한 권리임에도 탈레반은 이를 억압해왔다.

기자회견장 참석자 전원이 남성이다. Xinhua=연합뉴스

기자회견장 참석자 전원이 남성이다. Xinhua=연합뉴스

무자히드는 또 “아프간 내 민간 언론활동도 독립적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면서도 조건을 달았다. “기자들이 우리 국가의 가치에 반하는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다. 언론 통제를 예고한 셈이다.

대변인으로 얼굴을 처음 드러낸 무자히드는 그러나 국제사회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BBC는 아프간 현지 여성의 말을 인용해 “탈레반이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겠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BBC는 이어 “피를 엄청나게 흘려온 탈레반이 갑자기 ‘우리 변했다’라고 한다면 누가 쉽게 믿을 수 있겠나”라고 회의적인 목소리들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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