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지 교사·보험설계사에 목표 '건수' 할당 못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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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학습지 교사 김모(31)씨는 지난달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20만원을 회사에 냈다. 김씨가 회사로부터 할당받은 과목(학습지의 개수)을 못 채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130과목을 관리한다. 하지만 현재 계약이 유지되는 것은 122과목이다. 8과목이 빈다. 그는 과목당 3만5000원을 고객에게서 받아 자신이 1만원을 갖고 나머지는 회사에 납부한다. 따라서 8과목분 20만원을 대납하고 나면 그가 지난달 번 돈은 102만원이다. 김씨는 "회사에 불평하면 계약해지를 당하기 십상이어서 생돈을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내년부터는 이처럼 학습지 교사에게 회사가 개인당 목표를 정해놓고 무조건 달성토록 한다든가, 대납을 요구할 수 없게 될 전망이다.

노동부는 학습지 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보험설계사.레미콘 기사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에게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을 적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상자는 약 70만 명이다. 노동부는 이를 위한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보호대책 추진방안'을 지난달 말 열린우리당에 보고했다고 7일 밝혔다. 노동부는 이달 말까지 종합보호대책을 마련해 올해 안에 관련법을 개정키로 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현재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직 종사자를 근로자로 인정할지 여부는 노사정 간 협의를 거쳐 내년에 법제화할 계획이다.

정부 안에 따르면 학습지 교사.캐디 등 특수고용직 종사자와 업체 간의 거래는 공정거래법으로 엄격히 규제된다. 거래상 지위남용 금지와 불공정행위 금지 조항을 종사자에게 적용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보험설계사에게 목표를 할당하거나 무조건 출근토록 하고, 홍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하도급법에 따라 계약서도 반드시 주고받아야 한다. 계약이 불공정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정부의 안은 특수고용직을 자영업자로 해석한다. 따라서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해 완전한 노동3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동계와 정부의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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