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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공수처 이틀째 압색에 임의제출…“증거인멸 시간 준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21일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사무실에 대해 이틀째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결국 청와대가 임의제출 방식으로 자료를 제출했다. 전날 ‘윤중천씨 허위 면담보고서 작성’에 연루된 의혹을 받은 이 비서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청와대가 막은 데 대해 형사소송법과 공수처법을 정면 위반한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이틀 만에 관행을 이유로 정식 영장 집행이 아닌 임의제출한 걸 두고서도 자료 선별 제출이나 증거인멸 소지가 크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지난 1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는 모습. 뉴시스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지난 1월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는 모습. 뉴시스

“허위 보고서 작성 혐의 수사가 국가 이익 해치나?”

공수처 수사3부(최석규 부장검사)는 지난 20일 이 비서관의 청와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지만, 영장 집행에 실패한 뒤 오후 6시 30분 철수했다. 청와대는 “이 비서관이 청와대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아 사무실 PC 비밀번호 등을 알지 못한다” 등의 이유를 댔다고 한다.

이런 청와대의 행태가 압수수색 관련 규정을 둔 형사소송법 111조에 어긋난다는 견해가 나온다. 이 법은 “소속 공무소 또는 당해 감독관공서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승낙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미현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허위 면담보고서 작성 의혹에 대한 압수수색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라고 보이지 않는다”라며 “이 비서관이 연루된 사안이 국가안보나 비밀과 관련된 것도 아닌데 이 비서관이 청와대 비서실 소속이라는 이유로 근무장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절한 것은 형사소송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국가의 이익과 관련이 없고 비서관이 연루된 범죄에 대해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거부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성역없는 수사’를 한다며 공수처를 출범시킨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공수처 출범 취지를 앞장서 훼손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공수처법 제3조 3항은 “‘대통령, 대통령비서실의 공무원은 수사처의 사무에 관한 업무보고나 자료제출 요구, 지시, 의견제시, 협의, 그밖에 직무수행에 관여하는 일체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공수처의 수사 독립성을 보장하자는 취지인데 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수사를 방해한 건 공수처법에 어긋난다는 얘기다.

과천정부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모습. 뉴스1

과천정부청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모습. 뉴스1

“자료 선별, 증거인멸 시간만 줘버린 셈”

청와대는 이틀째인 이날 압수수색 집행이 아닌 임의제출 방식으로 공수처에 자료를 제공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압수수색은 오전 10시부터 시작해 오후 7시께 종료됐다”며 “이날 관련 자료를 청와대 측으로부터 임의제출 받은 후 영장에 기재된 대로 임의제출이 충분히 이뤄진 것인지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서면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비서실 등은 국가보안시설로 지정돼 있고, 보안 사항을 다루는 업무 특성상 압수수색 영장보다는 임의제출 방식으로 수사에 협조해 왔다”며 “이번 공수처의 영장 집행에도 이전과 방식으로 수사에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청와대가 수사를 회피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현 교수는 “청와대가 자료를 일괄제출하지 않고 선별제출 한다면 겉으로는 수사에 협조하는 모양만 취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압수수색의 효과도 반감될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수사 압수수색은 기습적으로 해야 효과가 있다”며 “이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은 사실상 압수수색을 예고한 뒤 이뤄진 것이어서 증거 인멸에 대한 시간을 줘 버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공수처의 이번 압수수색은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지난 3월 17일 공수처에 이첩한 허위 면담보고서 작성 의혹과 관련된 것이다. 이규원 검사는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근무하던 2018년 12월~2019년 1월까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 접대 의혹을 재조사하면서 접대 공여자인 건설업자 윤중천 씨를 여섯 차례 면담한 뒤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에는 이후 오보 사태로 이어진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에 대한 허위 사실이 기재돼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공수처는 지난 4월 말부터 ‘2021년 공제 3호’ 사건번호를 부여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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