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측 큰 양보에도 북 ″주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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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남북한을 가로막은 대화의 장벽은 높고도 두터 웠다
제2차 고향방문단 및 예술단교환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3일 열린 남북적십자 제5차 실무대표 접촉은 예술단의 규모라는 하찮은 문제가 걸림돌이 되어 합의 일보직전에서 물러서고 말았다.
우리측은 이날 4차 접촉 때의 입장에서 과감히 후퇴, 공연단 규모와 TV공연 실황중계에서 북측 안을 수용하겠다고 나섰다.
정부는 지난 11일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양보원칙을 확정하고 회담대표들에게 예술단규모를 1백50명 수준에서 마무리짓도록 전군을 위임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이날 예술단규모를 마지못해 2백50명에서 2백 명 선으로 해 일부러 타협점을 찾지 않으려는 속셈을 드러냈다.
베를린장벽 철폐 등이 북한측에 교류가 개방을 움츠리게 만드는 역작용을 초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리측의 우려가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회담진행과정에서 북측은 옷소매를 붙잡는 우리를 뿌리치는데 여념 없는 모습이었다.
북측 대표들이 비공개회의 진행관례를 깨고 회담초반부터 대뜸 공개를 고집한 것이나 이날아침 평양방송과 로동신문사설을 통해 고향방문단 교환문제에 진전을 보지 못한 책임이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비난한 것 등은 그들의 저의를 짐착케 하는 것들이다.
우리측이 오후까지 회의를 계속하거나 아니면 연내 교환이 성사되자면 다음 접촉을 14일 또는 17일에는 해야한다고 했으나 북한측은 『시간여유가 필요하다』 『19일 대의원선거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 21일을 고집했다.
사실 우리는 남북대화 재개 후 이번에 가장 많은 양보를 했다.
그 동안 타결된 ▲선 고향방문단 교환·후 적십자 본 회담 개최 ▲방문 대상지를 서울과 평양으로 국한시키는 문제 ▲방문기간 3박 4일 ▲공연실황 TV중계 ▲기자단 및 지원인원 축소 등은 모두 북한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그러나 북한측은 동구의 개혁바람이나 동독의 베를린장벽철폐가 그들의 대외 개방에 영향을 미쳐 그것이 체제를 붕괴시킬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오는 21일 6차 접촉에서 극적으로 타결될 마지막 실 날 같은 희망은 남아있지만 전망은 극히 어둡다. <김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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