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드라마 세트장 경쟁적 유치 예산 낭비 실태 점검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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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들의 경쟁적인 드라마 촬영장 유치가 대표적인 '예산 낭비'로 꼽혔다(본지 2월 21일자 1면). 이에 따라 드라마가 성공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교통 사정 등 사업 타당성을 면밀히 검토해 선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획예산처와 시민단체들이 최근 예산처에서 개최한 '예산 낭비 대응 포럼'에서다.

예산처와 행.의정 감시 전남연대에 따르면 전남 순천시는 최근 SBS프로덕션과 협약을 하고 드라마 '사랑과 야망'의 세트장 건립에 특별교부세와 시.도비 등 총 63억원을 지원했다. 전라남도는 투.융자 심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도 예산 12억원을 지급한 것으로 지적됐다. 특히 거액이 지원됐지만 세트장의 하루 유료 관람객은 약 750명으로 당초 시가 예상한 수준의 절반에 그쳤다.

충남 태안군 장길산 세트장도 지자체가 40억원과 1만5000평의 부지를 지원했지만 드라마가 끝난 뒤 관광객이 급감하고, 그나마 세트장을 만든 회사의 부도로 입장을 통제해 지자체 수입에 도움이 안 되는 것으로 지적됐다.

세트장 관광 열풍을 일으켰던 KBS '태조 왕건'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하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 충주호변의 세트장엔 개장 첫해인 2000년에는 많은 관광객이 몰렸으나 드라마 종영 후 찾는 사람이 급격히 줄었다. 제천시가 12억원을 들여 지원했던 세트장이지만 건물만 덩그러니 있을 뿐 이렇다 할 볼거리가 없다.

예산처 관계자는 "이번에 제기된 사례를 공식적인 '예산 낭비 신고'로 접수한 뒤 꾸준히 실태를 점검하겠다"며 "앞으로 특별교부세 등 국고에서 지원되는 돈이 드라마 세트장 건립에 쓰일 때는 사업 타당성 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연대 이상석 운영위원장은 "세트장 유치전이 과열되면서 방송국들이 제작비를 지자체에 떠넘긴다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세트장 건립 시에는 투.융자 심사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이를 거치지 않을 경우엔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적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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