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원전사건 기소…김오수, 백운규 배임교사 혐의는 뺐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법정에 서게 됐다.

직권으로 수사심의위 넘겨 제동 #백운규·채희봉에 직권남용 적용 #법조계 “검찰총장이 정권방패 맡나” #“배임교사 인정 땐 산업부 책임 분명 #탈원전 국가 상대 손배소도 가능”

다만 수사팀은 백 전 장관에게 배임 교사 혐의까지 있다고 봤지만, 김오수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소집을 결정해 판단을 미뤘다. 이를 두고 청와대의 탈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책임론을 회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는 30일 백 전 장관과 채 전 비서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업무방해 혐의로, 정 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청와대 책임론 피하려, 백운규 배임교사 적용 안 했나

김오수 검찰총장이 30일 관용차를 타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오수 검찰총장이 30일 관용차를 타고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2018년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 평가에 부당 관여하고 한수원 이사회를 압박해 ‘즉시 가동 중단’을 의결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백 전 장관은 채 전 비서관과 공모해 2017년 11월 한수원이 월성1호기 조기 폐쇄 의향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업무방해)를 받고 있다. 백 전 장관은 산업부 공무원이 2018년 4월 ‘월성1호기를 2년 반 동안 한시적으로 가동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를 올리자 “너 죽을래?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써서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은 백 전 장관의 월성1호기 즉시 가동 중단 지시에 따라 경제성 평가 결과를 조작하고, 조작된 평가 결과를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에 제출해 이사회를 기망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 업무방해)를 받는다. 검찰은 정 사장의 경제성 평가 조작 등으로 월성1호기가 폐쇄돼 한수원이 1481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봤다.

채 전 비서관은 올해 11월까지 운영이 보장된 월성 원전을 조기 폐쇄하기 위해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는 한수원 의사를 무시하고 즉시 가동을 중단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2017년 11월 월성1호기 조기 폐쇄 의향을 담은 ‘설비현황조사표’를 한수원 측이 제출하도록 하고, 이사회 의결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백운규, 채희봉, 정재훈(왼쪽부터)

백운규, 채희봉, 정재훈(왼쪽부터)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은 검찰 중간간부 인사 전날인 지난달 24일 부장검사 회의를 열고 백 전 장관과 정 사장, 채 전 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고 전원 합의했다. 특히 백 전 장관과 정 사장에게는 업무상 배임 혐의를 함께 적용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결론내렸다. 백 전 장관이 정 사장에게 배임·업무방해를 교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엿새 만에 이 부분은 공소사실에서 빠졌다. 대신 김오수 총장이 직권으로 수심위를 열어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검찰이 아닌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에 백 전 장관의 기소·불기소 여부를 물어보자는 뜻이다.

이처럼 검찰 수장이 일선 부장검사들이 만장일치로 뜻을 모은 ‘배임 기소’를 틀어막는 것을 두고 “검찰이 아닌 정권 방패가 되려 총장을 맡은 것이냐”란 비판이 나온다. 백 전 장관에 대한 배임교사가 적용될 경우 향후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가 상대 민사 손해배상 소송이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백 전 장관이 포함되면 한수원 차원이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이 가능해진다”며 “한수원을 관장하는 산업부의 배임 책임이 분명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당초 월성1호기는 개·보수에 7000억원이 투입돼 수명이 2022년 11월까지 연장됐지만,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조기 폐쇄를 관철했다. 조기 폐쇄 결정은 2018년 4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1호기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참모들에게 말한 이후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문재인 정권이 맹목적 판단으로 탈원전이라는 운전대를 잡고 잘못된 길에 접어들어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김수민·강광우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