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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삐끗하자 주목 받는 최재형, 野 “늦어도 8월 등판”

중앙일보

입력

최재형 감사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 임시회의에서 대선 출마 질문에 "숙고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치권에선 "사실상 대선 출마에 무게를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오종택 기자

최재형 감사원장은 지난 18일 국회 법사위 임시회의에서 대선 출마 질문에 "숙고하고 있다"고 답했다. 정치권에선 "사실상 대선 출마에 무게를 둔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오종택 기자

“요즘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 중 누가 더 대선에서 승산 있을 것 같냐는 의원들이 부쩍 늘었다”

국민의힘 대구·경북(TK) 지역 초선 의원이 20일 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그동안 윤 전 총장만 바라보던 의원들이 조금씩 최 원장에게도 고개를 돌린다는 의미”라며 “최 원장 입장에선 다시 오지 않을 타이밍이라는 당내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대선주자 최재형’이 점차 야권의 현실적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최 원장이 잠재적 주자로 거론되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이지만 윤 전 총장의 기세가 주춤하면서 새삼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윤 전 총장은 최근 국민의힘 입당을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으로 물음표를 남겼고, ‘윤석열의 입’으로 불린 이동훈 전 대변인이 이날 임명 열흘 만에 사퇴하는 잡음도 일었다. 윤 전 총장의 의혹이 담겼다는 이른바 ‘X파일’을 놓곤 야당에서도 “만약 법적 문제가 있으면 처벌받고 사과해야 한다”(김재원 최고위원)는 말이 나왔다.

윤석열 대 최재형 구도, 불리하지 않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최근 국민의힘 입당에 거리를 두는 발언을 했다. 사진은 윤 전 총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해 박수치는 모습. 우상조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최근 국민의힘 입당에 거리를 두는 발언을 했다. 사진은 윤 전 총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예장공원 개장식에 참석해 박수치는 모습. 우상조 기자

그러는 사이 최 원장은 대선 도전 의지를 어렴풋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는 지난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대선 출마에 대해 “숙고하고 있다”고 했고, 감사원장이 대선에 직행하는 게 적절하냐는 질문엔 “다양한 판단이 있다”고 반박했다. 이를 지켜본 한 국민의힘 법사위원은 “대선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라고 평했다.

국민의힘에선 최 원장 출마설에 불을 지피는 인사들이 늘고 있다. 최 원장과 교감을 하는 한 당 인사는 “늦어도 8월, 이르면 내달에는 등판할 거로 본다”고 말했고, 김기현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정치 도전의 의지는 이미 읽었다. 꽃다발은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야권에선 최 원장의 강점을 크게 두 가지로 꼽는다. 강직한 성품이라는 세간의 평가와 ‘미담 제조기’라고 불리는 인생 스토리다. 고등학교 시절 소아마비를 앓던 친구(강명훈 변호사)를 업어서 등·하교시키고 서울대에 진학, 사법고시까지 함께 합격한 일화나 2남 2녀 중 두 아들을 입양해 키운 스토리는 젊은 층이나 여성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전쟁 당시 대한해협해전에서 공을 세운 부친 최영섭 예비역 대령 등 가족사도 ‘집토끼’인 전통 보수층의 표심을 자극할 요소다.

당 일각에선 ‘윤석열 대 최재형’ 구도가 형성되면 최 원장이 불리하지 않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국민의힘 부산지역 의원은 통화에서 “정권 초 적폐 수사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윤 전 총장에 대한 당원들의 반감이 상당한데, 최 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도 “윤 전 총장이 검사로 싸우면서 강직한 이미지를 구축해왔다면, 최 원장은 갈등보단 포용으로 커 온 사람”이라고 평했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성인군자라고 부를 만한 지도자의 성품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성품 말고 정치 상품 안 보인다” 냉정론도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해 11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생각에 잠긴 모습. 오종택 기자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해 11월 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생각에 잠긴 모습. 오종택 기자

하지만 야권에선 “성품만으론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냉정한 반응도 적지 않다. 정치권의 평가에 비해 부족한 대중 인지도도 약점으로 꼽힌다. 정치적 중립이 생명인 감사원장직을 떠난 직후 대선에 직행하는 것도 부담이다. 한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과거 탈원전에 대해 원칙적 수사를 한 게 최 원장의 무기였는데, 정치에 직행하면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직 정치인으로서의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도 숙제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는 “‘강직함’이나 ‘지도자감’ 같은 추상적 이미지를 넘어설 최재형만의 ‘정치 상품’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며 “정치를 하겠다면 어떤 메시지와 어젠더를 낼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7~8월 도전설’에는 명분과 인지도 등을 보완하기 위해선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고려가 포함돼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좌고우면하지 않고 입당한 뒤 당의 뒷받침 속에 기반을 넓히는 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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