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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일대일로 저격’ 뒤엔 AIIB 악몽…中 편 섰던 한국, 이번엔?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앞줄 오른쪽 두번째)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 앞에서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앞줄 오른쪽 두번째)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 양자회담장 앞에서 G7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영국 콘월에서 진행중인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십을 제안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을 직접 저격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바이든, G7서 새 인프라 파트너십 제안 #"개발도상국에 양질의 금융 지원" #개도국에 빚 안기는 中 '부채 외교' 겨냥 #2015년 中 띄운 AIIB에 오바마 완패 기억 #21세기 미ㆍ중 간 권력 이동 변곡점 #文 정부, 일대일로-신남방 '연계' 입장

이번 G7 정상회의 의장국을 맡은 영국은 12일(현지시간) 공식 행사 홈페이지에 “G7 정상들은 개발도상국들의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 지원 구조를 변환할 새로운 계획에 합의하기로 했다. 세계를 위한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 WorldㆍB3W) 계획은 G7 국가들이 협력해 아프리카의 철도 사업부터 아시아의 풍력 발전에 이르기까지, (개도국의)필수 인프라 건설을 위해 양질의 금융 지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더 나은 재건’은 바이든 대통령이 인수위 때부터 내건 모토로, 이를 동맹 및 우방국들과 공유할 수 있는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특히 B3W 계획의 목적을 ‘양질의 금융 지원 제공’으로 명시한 것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이 결국 ‘부채 외교’에 불과하다는 비판과도 맞닿아 있다. 그간 국제사회에서는 중국이 일대일로 구상을 통해 개도국에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를 위한 금융 개발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해당 국가가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부채를 떠안기고, 중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열린 G7 확대회의 1세션에서 각국 정상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뉴스1

G7 정상회의 참석차 영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왼쪽 두번째)이 12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열린 G7 확대회의 1세션에서 각국 정상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뉴스1

이처럼 바이든 대통령이 일대일로를 노리는 배경은 부통령이던 시절 목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사태와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이던 2015년 중국이 주도한 AIIB 설립은 미국과 일본이 이끄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체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국제금융의 변방이나 마찬가지였던 중국이 새로운 금융기구를 설립해 아시아에서 미국과 붙어보겠다는 이빨을 드러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백악관은 노골적으로 동맹ㆍ우방국들의 불참을 압박했다. 하지만 유럽의 핵심 동맹국인 영국을 필두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까지 빠르게 참여를 선언했다. 결국 AIIB 사태는 21세기 미ㆍ중 간 권력의 이동을 상징하는 큰 변곡점으로 기록됐고,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까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이는 곧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졌다. 2016년 설립 당시 57개국이던 AIIB 회원국은 올 1월 기준으로 103개국까지 늘었다. 이미 ADB 가입국 수(68개국)를 크게 앞질렀다. AIIB는 사실상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만들며 일대일로 구상에 가속도를 붙이는 데 톡톡히 역할 했고, 시 주석의 중국몽 실현을 위한 핵심 기제로 자리 잡았다.

부통령이었던 2013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조 바이든 대통령. 연합뉴스

부통령이었던 2013년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난 조 바이든 대통령. 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당시 부통령으로서 AIIB 사태와 관련된 일련의 상황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그가 G7 정상회의에서 일대일로 구상을 견제하기 위해 동맹과 우방을 향해 새로운 글로벌 인프라 파트너십을 제안한 것도 당시의 뼈아픈 완패를 만회하고 이제라도 중국이 왜곡해놓은 국제금융 질서를 바로잡겠다는 의도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2015년 당시 한국은 끝까지 미국의 반응을 살피며 고민하다 막판에 AIIB 참여를 결정했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최대한 시간을 끌었다고는 하지만, 결국 중국 편에 선 셈이다. 이후 같은 해 9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 참석, 시 주석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오르며 워싱턴 내에서 한국의 대중 경사론에 대한 우려는 본격화하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앞줄 중앙)은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AIIB 연차총회 개회식에 참석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앞줄 중앙)은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AIIB 연차총회 개회식에 참석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는 그간 일대일로와 신남방정책을 연계해 협력사업을 발굴하자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동시에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ㆍ태평양 구상 역시 신남방정책과 조화로운 협력이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일대일로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선 만큼 이런 식의 줄타기는 힘들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한ㆍ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략적 무게추를 미국 쪽으로 일부 옮겼다는 평가가 나왔는데, 이런 방향을 일관되게 유지할지가 일대일로 문제에서 판가름날 수도 있게 됐다.

앞서 G7 정상회의 직전인 지난 9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전화 통화를 하고 양국 관계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한국 측 요청으로 이뤄진 통화로, 이른바 ‘차이나 리스크’ 관리를 위한 목적으로 보인다. 다만, 양국이 발표한 통화 관련 보도자료에서 일대일로와 신남방정책 협력 등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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