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XX놈’ 이용구 영상 반년간 덮은 檢…“靑·이성윤도 뭉갰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한 뒤 “영상을 지우시는게 어떠냐”고 말한 것으로 드러난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3일 “‘영상을 지우시는게 어떠냐’는 말이 블랙박스 원본 영상을 지워달라는 뜻은 전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이 주요 물증인 폭행 영상을 확보한 지 6개월간 이 차관에 대한 사건 처리를 하지 않은 채 차관직을 수행하게 한 데 대한 비판이 줄을 잇고 있다.  청와대는 이 차관이 지난주말 낸 사표를 영상 공개 하룻만인 이날 오후 수리했다.

'운행 중 택시기사 멱살' 이용구 영상 6개월 보관만한 檢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다. 사진 SBS 캡쳐

택시기사의 멱살을 잡는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모습이 영상에 담겨 있다. 사진 SBS 캡쳐

지난 2일 방송 보도를 통해 공개된 37초짜리 블랙박스 영상에는 이 차관의 폭행이 낱낱이 담겨있다.

검찰 역시 6개월 전 이미 영상을 확보했다. 지난해 12월 말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이동언)는 이 차관에게 폭행을 당했던 택시기사 A씨로부터 휴대전화와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제출받았고 디지털 포렌식을 진행했다.

A씨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찰 조사에서 ‘영상을 지웠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실제 영상을 지운 적이 없다”며 “검찰에서 포렌식을 할 때도 (내 휴대전화에) 이미 영상이 존재했으므로 ‘복원’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단독]“이용구 폭행 피해자인데 입건…거짓말탐지기도 요구”)

11월 6일 오후 11시30분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이 이뤄진 장소. 박현주 기자

11월 6일 오후 11시30분쯤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이 이뤄진 장소. 박현주 기자

이 영상은 주행 도중 이 차관의 서울 서초동 자택 부근에서 ‘잠시후 목적지 부근입니다’란 네비게이션 안내 음성이 나오자 택시기사가 “여기 내리시면 돼요?”라고 묻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뒷자리에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은 채 앉아 있던 이 차관이 기사를 향해 갑자기 “이 XX놈의 XX”라고 욕설을 한다. 마스크를 쓴 기사가 고개를 돌리며 “왜 욕을 하세요. 저한테 욕하신 거에요?”라고 되묻자 이 차관은 삽시간에 기사에게 달려들어 수 초간 멱살을 잡으면서 “너 이 개XX야, 너 뭐야”라고 윽박지른다.

이는 이 차관에게 특가법상 운전자 폭행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 핵심 물증이다. 특가법 제5조의 10은 ‘운행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에는 특히 ‘운행 중’의 범주에 대해 ‘여객자동차운송사업을 위하여 사용되는 자동차를 운행하는 중 운전자가 여객의 승차·하차 등을 위하여 일시 정차한 경우를 포함한다’는 내용이 2015년 법 개정으로 추가됐다.

그런데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이 차관의 욕설과 폭행은 자택 도착 전 인근에서 택시가 움직이는 주행 도중에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李 '운행중 폭행' 침묵, “원본지우라 안했다” 증거인멸교사만 부인

이 차관은 이날 변호인을 통해 낸 입장문에서 ‘주행 중 폭행’ 사실에 관해선 전혀 언급을 피한 채 ‘증거인멸 교사’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우선 이 차관은 사건 이틀 뒤인 11월 8일 해당 기사에게 합의금으로 1000만원을 송금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영상 삭제의 대가는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액수에 대해서는 “통상의 합의금보다 많은 금액이라고 생각했지만 당시 변호사였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로 거론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위 금액을 드렸다”고 해명했다.

또 ‘영상을 지우시는 게 어떠냐’고 말한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택시기사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영상이 제3자에게 전달되거나 유포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뿐, 블랙벅스 원본 영상을 지워달라는 뜻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전날(2일) 오후 반가를 낸 이 차관은 이날도 연가를 쓰고 출근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지난달 28일 사의를 표명한 이 차관의 사표를 영상이 공개된 지 하루만인 이날 오후에야 수리했다.

판사 출신인 이 차관은 2017 년 8월 비(非)검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법무부 법무실장에 임명돼 지난해 4월까지 박상기·조국·추미애 장관을 보좌했다.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로도 꼽혔다. 뉴시스

판사 출신인 이 차관은 2017 년 8월 비(非)검찰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법무부 법무실장에 임명돼 지난해 4월까지 박상기·조국·추미애 장관을 보좌했다. 정부의 검찰개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인물로도 꼽혔다. 뉴시스

검찰 안팎 “법 정의 바로 세울 차관이…靑‧檢은 뭐했나”

이날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미 지난해 말 검찰이 핵심 물증에 해당하는 폭행 영상을 확보했다면, 주요 공직자 수사이기 때문에 신속히 사건을 처리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한 검찰 간부는 “이 차관 말마따나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정권 핵심 인물이기 때문에 이성윤 중앙지검장은 당연하고 청와대에도 보고됐을 사안”이라며 “이를 알면서도 6개월 동안 법무부 차관을 수행하게 한 청와대도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논평을 내고 “공직에 임명되었어도 안 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법 정의를 바로 세우는 법무부 차관직에 6개월이나 있었어도 안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검찰 간부는 현재 이 차관의 택시 기사 폭행 사건과 경찰의 사건 무마 의혹은 서울중앙지검이, 증거인멸 교사 혐의는 경찰이 나눠 맡은 것을 두고 “검‧경이 사건을 분리해서 하는 탓에 사건 처리에 더욱 오랜 시일이 걸렸을 것”이라며 “이것이 검찰개혁의 효과인가”라고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동영상을 두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로 과거사 조사를 했던 현 정권이 이용구 차관의 기사 폭행 영상을 6개월간 덮은 건 어떤 식으로 설명할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김수민·정유진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