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재신임' 정국] 여론조사에 고무된 청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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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야3당의 진검승부가 시작됐다. 전부를 얻거나 모두를 잃는 전면전이다. 盧대통령은 '국민을 직접 상대하는 정치'구상을 드러내고 있다. 국민투표로 위기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야3당은 최도술 사건 등 측근 비리와 盧대통령의 대선자금에 대해 공조를 모색 중이다.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 추진에 힘을 합치려는 움직임이다. 국민이 盧대통령의 손을 들어주면 국면은 일거에 반전된다.

정치권의 새판 짜기도 급속도로 이뤄질 전망이다. 반대의 경우엔 盧대통령은 도중하차할 수 있다. 국론 분열과 혼선 가중으로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재신임 의사를 밝힌 뒤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발언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盧대통령은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내각.청와대 참모들의 사표를 반려했다. 재신임을 묻는 이유가 이들의 보좌 책임에 있는 게 아니라 자신과 '전체 정국 구도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다. 초점을 주변 참모들의 도덕성 문제에서 평소 표현해온 '지독한 여소야대 구조'로 이동시키는 언급이다.

때맞춰 청와대 주요 참모들은 盧대통령의 재신임을 놓고 국민투표를 하게 될 경우 정책, 특히 정치개혁과 연계시키는 방안을 거론하고 나섰다.

야당의 국정혼란 주장에 대한 盧대통령의 반박도 한층 공세적으로 변했다. 盧대통령은 가장 확실한 우군인 노사모 회원들에게 '한 길'을 호소하는 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盧대통령과 청와대의 기류 변화에는 재신임 발언 직후 실시한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에서 '재신임하겠다'(47.7%)는 응답이 '불신임'(44.4%)보다 높게 나오는 등 여론이 호의적으로 조사된 점이 작용한 듯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盧대통령이 재신임 의사를 밝힐 때만 해도 청와대 비서관들 사이에선 "재신임이 되겠느냐"는 우려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거의 모든 여론조사에서 재신임하겠다는 반응이 우세하게 나타나자 12일의 청와대 분위기는 고무되기 시작했다.

다만 청와대는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강조하는 盧대통령의 승부수가 정치권 전체를 뒤엎으려는 기획에 의한 것이란 여론이 생성돼 역풍으로 바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재신임 사유에 대해 말을 바꾸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盧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야권의 국정혼란 주장에 대해 김두관 행자부 장관 해임건의안, 윤성식 감사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사례를 꺼낸 데 대해 "(감사원장 동의 문제 등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한 사유는 아니지만, 재신임으로 국정 혼란이 온다는 주장이 나와서 제기하는 것"이라고 직접 해명했다.

盧대통령은 스스로 "이 기회를 (누구든) 정략적으로 이용해선 안될 것"이라고 밝혔고, 유인태 수석 등 주요 참모들은 재신임 국면에서 "유.불리를 따지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어 盧대통령은 재신임으로 불안해 하는 국민을 의식한 듯 회견에서 "(재신임 결론전까지)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법대로 행사해 국정의 중심을 잡아가겠다"며 "국민께서도 그렇게 용납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盧대통령은 12일에는 청와대에서 국회 시정연설 준비에 몰두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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