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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수 비극'이 분위기 바꿨다…차별금지법 청원 하루 3만명

중앙일보

입력

지난해 7월 한 달 동안 2만 5000여명을 모으는 데 그쳤지만, 올해는 하루 만에 동의 수 3만명을 넘은 국민동의청원이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청원 얘기다.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30일 이내 10만명 이상 동의할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된다.

동아제약 채용 면접에서 받은 성차별적 질문을 공론화한 20대 여성 A씨와 시민단체들이 모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 24일 "모두의 존엄과 평등을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원 하루 만인 25일 오후7시 시준 3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엔 2만5000여명에 그쳤다. [국민동의청원 캡쳐]

청원 하루 만인 25일 오후7시 시준 3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엔 2만5000여명에 그쳤다. [국민동의청원 캡쳐]

변희수 하사 사망, 채용 차별 논란 이어지며 탄력   

작성자 A씨는 청원을 통해 "유복한 한국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했으며, 이성애자이자 비장애인인 기득권으로 살아왔다"면서 "6개월 전 (면접에서) 성별을 이유로 힘없이 바스러지는 경험을 했다. 남들과 비슷하게,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은 (당시) 사건과 동시에 무너졌다"고 했다.

24일 기자회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24일 기자회견.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제공]

지난 3월 고 변희수 전 하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후 채용 과정 성차별 논란이 이어지며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과 장애 인종, 종교, 성적 지향 등을 이유도 한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차별금지법은 2006년 노무현 정권 시절 인권위가 처음으로 제정 권고를 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국정 과제에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이 포함됐다.

정의당 이어 민주당도 곧 발의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4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포괄적 차별금지법 연내 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지난 4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포괄적 차별금지법 연내 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21대 국회에서는 지난해 6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성별·장애·나이·혼인 여부·종교·사상·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직간접 차별을 당할 경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고, 시정 권고를 받은 자가 이행하지 않을 경우 3000만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이 의원은 25일 중앙일보에 "여러 사정으로 미뤄왔지만, 법안은 준비된 상태고 1~2주 후 발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다른 법안과 다르게 벌칙, 형벌 조항은 개별조항이나 후속법에 의해 규율할 수 있다고 보고 뺐다. 법안은 차별의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전체적인 영역을 다룬다"고 설명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오종택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오종택 기자

앞서 인권위는 지난해 7월 "장애, 성별 등 차별을 규제하는 개별법이 있지만 다양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포괄적 평등법으로 헌법의 핵심인 평등 원칙을 실현해야 한다"며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평등법)을 제정하라고 국회에 의견을 표명했다. 입법을 권고한 2006년 이후 14년 만이다.

인권위 "찬성 88.5%"…일부 교계 반대 

인권위의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만19세 이상 전국 성인 1000명)에 따르면 응답자의 27.2%는 지난 1년간 차별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차별 사유는 성별, 연령, 학력, 경제적 지위 등의 순서였다.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법률제정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기독교단체인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은 별도의 여론 조사 결과 47.7%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고, 찬성은 39.9%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인권위. 연합뉴스

인권위. 연합뉴스

"효과적 구제절차 필요, 처벌은 신중해야" 

김대근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우리나라엔 고령자나 장애인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할 필요성이 나온다"면서 "차별을 부당하게 감수해온 소수자들에게 차별금지법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고 효과적인 구제절차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처벌에 있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 박사는 "인권침해나 차별의 형식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무엇이 차별인지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삼기 어려우며 추상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형사 처벌을 부과하는 것은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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