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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가 만든 원통한 죽음…4년뒤 진범 DNA 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2017년 4월 아칸소주에서 살인 혐의로 사형된 레델 리. 유족은 사형 집행 4년만인 최근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면서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4월 아칸소주에서 살인 혐의로 사형된 레델 리. 유족은 사형 집행 4년만인 최근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다면서 재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4년 전 미국 아칸소주에서 살인 혐의로 사형당한 흑인 레델 리 사건이 재조명받고 있다. 리의 무죄를 입증할 새로운 증거가 연이어 추가로 발견되면서다.

22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리 유족 측 변호인단은 범행 도구로 지목된 나무 곤봉과 이 곤봉을 감싸고 있던 피 묻은 셔츠에서 동일한 DNA가 나왔다고 밝혔다. 지난달 나무 곤봉 손잡이에서는 리가 아닌 다른 남성의 DNA가 발견된 바 있다.

변호인단은 “범죄 현장에서 발견됐던 6가닥의 머리카락 DNA 재검사도 의뢰했는데, 그 중 5가닥은 리의 것일 가능성이 배제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새로운 증거는 리의 무죄를 입증하고 있으며, DNA의 주인이 해당 사건의 진범일 가능성이 있다”는 유족 측의 주장을 전했다.

살인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레델 리가 지난 2017년 4월 20일 사형장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 [CNN캡처]

살인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레델 리가 지난 2017년 4월 20일 사형장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줄곧 무죄를 주장했다. [CNN캡처]

다만 DNA의 주인이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CNN에 따르면 미국의 DNA 데이터베이스에도 일치하는 정보가 없는 상황이다. 변호인단은 피해자의 손톱과 지문에서 채취한 DNA 검사도 다시 해야 한다며 재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열흘간 8명 사형…“무고한 시민 살해” vs “합법적 판결”

이번 사건은 아칸소주의 사형제도 찬반 논란에도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2017년 아칸소주가 급하게 사형제도를 부활시켰다는 비판이 나오면서다.

리는 1993년 이웃 데브라 리즈(당시 26세)를 둔기로 때리고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1995년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사건 현장 인근에서 리를 보았다는 이웃 주민들의 목격담을 결정적 증거로 인정했다.  그러나 리는 복역 내내 무죄를 주장했다.

레델 리 유족측 변호인 리쇼트는 CNN과 인터뷰에서 ″새 증거들이 사형 집행 전 제시됐다면 레델 리는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NN캡처]

레델 리 유족측 변호인 리쇼트는 CNN과 인터뷰에서 ″새 증거들이 사형 집행 전 제시됐다면 레델 리는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NN캡처]

그러던 중 2017년 아칸소주가 갑자기 사형 집행을 서둘렀다. 당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등장과 함께 미국의 사형 제도가 부활하던 때다. 이에 아칸소주도 12년 만에 사형 집행을 부활시킨 것이다. 그리고는 사형 집행에 사용되는 주사 약물 미다졸람의 사용 기간의 종료가 임박했다는 이유로 그해 4월 20일부터 약 열흘간 8명을 연이어 사형시켰다.

당시 리 측 변호인단은 증거품에 대한 DNA 검사를 여러 차례 요구하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사형 집행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모두 기각했고, 리는 아칸소주에서 12년 만에 사형이 집행된 첫 사형수가 됐다. 그는 사형장으로 향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중계 카메라에 대고 “내 유언은 언제든 같다. 바로 내가 결백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사형집행 영장 만료 3분 전인 20일 밤 11시57분 사망했다.

유족 측 변호인 리 쇼트는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판사는 사건 현장 인근에서 리를 봤다는 목격자들의 말만 믿고, DNA 검사는 무시했다”면서 “새로 나온 증거들이 (집행 전에) 제시됐다면 리는 지금 살아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리의 사례가 사형집행을 서두르면 발생할 수 있는 비극을 보여줬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로버트 던햄 미국 사형정보센터 이사는 “미국에서 사형수 8명 중 1명꼴로 무죄가 밝혀져 석방됐다”면서 “사형제도의 부활로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됐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2017년 레델 리의 사형 집행 연기 요청을 거부한 허버트 라이트 판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합법적인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CNN 캡처]

2017년 레델 리의 사형 집행 연기 요청을 거부한 허버트 라이트 판사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합법적인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CNN 캡처]

리의 사형 집행 연기 요청을 거부한 판사 허버트 라이트는 판결에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변호인단은 집행 날짜가 임박해 수년에 걸릴 DNA 검사를 요청했다”면서 “지금 다시 판결을 내리더라도 내 결정이 바뀔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나에게 '최악의 두려움'은 한 가지 누락된 증거가 사건 결과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경우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내 앞에 놓인 증거를 바탕으로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법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칸소주 법무상 레슬리 루트리지도 “당시 리가 피해자인 리스의 자택에 들어갔다가 20분 뒤 나가는 것을 본 목격자의 증언이 있었다”면서 “리의 사형은 합법적으로 집행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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