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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언급 없이 중국 겨눴다…'쿼드언어' 쓰기 시작한 한·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문재인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오찬을 겸한 단독 정상회담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문재인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오찬을 겸한 단독 정상회담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한ㆍ미 동맹이 ‘쿼드(미국ㆍ일본ㆍ호주ㆍ인도 간 협의체)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미ㆍ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온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 변화가 감지된다.

文ㆍ바이든 정상회담 공동성명 #정부 '전략적 모호성' 변화 기류 #"국제질서 저해 행위 반대한다" #쿼드의 '대중 견제' 표현과 비슷

21일(현지시간) 한ㆍ미 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도출된 공동성명은 ‘중국’이란 단어 없이 사실상 중국을 겨냥하는 내용들이 포함됐다. “한국과 미국은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를 저해하거나, 불안정하게 하거나, 위협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한다. 또 포용적이고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ㆍ태평양 지역을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앞서 지난 3월 쿼드 정상회의 뒤 나온 공동성명 ‘쿼드의 정신’ 역시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으면서 비슷한 표현으로 사실상 중국의 규범 교란 행위를 문제삼았다. “우리는 인도ㆍ태평양과 이를 넘어서는 지역에서의 안보와 번영을 증진하고 위협에 맞서기 위해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규범 및 국제법에 기반한 질서 증진에 전념한다”고 돼 있다.

한ㆍ미 성명상 “질서 저해에 반대한다”와 쿼드 성명상 “질서 증진에 전념한다”는 사실상 맞닿아 있는 표현이다. 이런 표현의 유사성은 사실상 ‘한국도 쿼드와 생각이 비슷하다’는 신호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 오후(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쿼드에 대한 규정도 묘하게 달라졌다. 그간 정부는 쿼드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로 “특정 국가를 배척하기 위한 배타적 지역구조는 만들면 안 된다”(3월 최종건 외교부 1차관)는 입장을 밝혀왔다. 쿼드의 대중 견제 성격을 배타성으로 연결시켜 한국은 함께 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한ㆍ미 공동성명에는 “한국과 미국은 쿼드 등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며 쿼드를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구조로 인정했다. 쿼드는 그대로인데, 쿼드의 성격에 대한 한국의 규정이 달라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이제 한국이 쿼드에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한ㆍ미 간 백신 협력이 자연스럽게 한국의 실질적 쿼드 참여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ㆍ미는 공동성명에서 “포괄적인 한ㆍ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며 “우리는 과학자, 전문가 및 양국 정부 공무원으로 구성된 고위급 전문가 그룹인 ‘한ㆍ미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전문가 그룹’을 발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쿼드 역시 백신 생산 증가를 목표로 한 백신 전문가 워킹 그룹을 두고 있다. 백신 분야에서 미국이라는 공통분모를 고리로 ‘쿼드(4국)+듀오(한ㆍ미)’ 방식의 협력도 가능할 수 있다. 정부는 최근 들어 쿼드와 분야별 협력은 가능하다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한 터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함께 쿼드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함께 쿼드 첫 정상회의를 열었다. AFP=연합뉴스

한ㆍ미가 오히려 쿼드보다 앞서 나간 부분도 있었다. 대만 해협 문제 언급이었다.
한ㆍ미 공동성명에는 “바이든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대만 해협에서의 평화와 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그간 대만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문제 제기를 중국이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해온 점을 고려하면, 한ㆍ미 정상회담 결과물에 대만 문제가 들어간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쿼드 공동성명에는 대만 언급은 없었다.

특히 이는 중국을 노골적으로 비판한 지난달 미ㆍ일 정상회담 공동성명과 비교해도 수위가 비슷하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는 “우리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관련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한다”고 했다.

미ㆍ일 공동성명에 포함된 홍콩 및 신장 위구르족 인권 문제에 대한 우려는 한ㆍ미 공동성명에선 빠졌다. 그런데 대만 해협 문제를 언급한 뒤 바로 다음에 “한ㆍ미는 다원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우리는 국내ㆍ외에서 인권 및 법치를 증진하자는 의지를 공유했다”는 문장이 들어갔다.
공동성명의 해당 문단 자체가 ‘국제 규범 저해 행위 반대→남중국해에서 국제법 존중→대만 해협의 평화ㆍ안정 중시→국내ㆍ외 인권 증진’ 순서로 구성됐다. 모두 중국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볼 소지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백악관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뉴스1

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 앞서 백악관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접견하고 있다. 뉴스1

이는 불과 두달여 전인 지난 3월 18일 한ㆍ미 간 외교ㆍ국방(2+2) 장관 회의 뒤 내놓은 공동성명에서 중국과 조금이라도 연결될 수 있는 부분은 모두 뺀 것과는 비교된다. 당시만 해도 정부는 쿼드나 중국 관련 내용이 공동성명에 들어가지 않은 것을 성과처럼 주장했다.

이같은 입장 변화가 근본적 전략적 기조의 변화인지, 백신이나 북핵 등 다른 분야에서의 한ㆍ미 간 협력을 염두에 둔 일시적 입장 조정인지는 명확치 않다. 다음 대선까지 남은 임기 10개월 동안 문재인 정부가 이런 입장 변화를 실질적 조치로 구현할지가 관건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회담 뒤 기자들과 만나 한국의 쿼드 참여 논의 가능성에 대해 “(소인수 및 확대회담에서는)특별히 논의된 사항은 없었다”면서도 “우리 정부는 개방성, 투명성, 포용성 등의 원칙에 부합하는 어떤 협의체라도 협력이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공동성명상)입장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이미 쿼드 참여국들과 사안별로 다양한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공동취재단, 서울=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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