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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수사기관 난맥상, 국민은 누구를 믿어야 하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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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6호 30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박 장관은 최근 “증권합수단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박 장관은 최근 “증권합수단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1]

문재인 정부의 검찰과 경찰 등 국가 수사기관 개혁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져 계속 혼선을 초래하고 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최근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의) 부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의 부동산 투기에 이어 증권시장 주가조작과 허위 공시 등 자본시장법 위반 사례들이 염려되기 때문이라면서다.

검찰은 수사 배제, 공수처는 ‘1호 사건’ 논란 #경찰, 초동수사 미흡하고 뭉개기로 불신 자초 #증권범죄 합수단 부활해 라임 비리 수사해야

한때 ‘여의도 증권가 저승사자’로 불렸던 증권범죄 합수단이 부활되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1년 5개월 전 결정이 잘못됐음을 현 장관이 인정하는 꼴이 된다. 당시 합수단을 갑자기 공중분해한 당사자가 추 전 장관이다. 전관예우 불식 등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여권 인사 비리 의혹이 제기된 신라젠과 라임자산운용 사건 수사가 한창일 때였다.

당시 합수단 수사의 불똥이 정권 핵심부로 튀는 걸 막기 위한 것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나왔다. 합수단 해체 이후 두 가지 수사는 지연·정체됐다. 합수단 부활 소식에 추 전 장관은 그제 “전관(변호사)이 승리하고 죄수를 이용한 검사가 다시 활개 치고 검은 거래시장이 재개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일부 검사가 잘못했다면 도려내고 가면 된다. 수사단 조직을 통째로 없애는 게 결코 잘한 일이 아니다.

수사기관 개혁의 갈팡질팡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개혁의 결과로 검찰의 수사권한이 대폭 축소됐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신설됐다. 1차 수사 종결권을 갖게 된 경찰엔 전국적 수사를 담당하는 국가수사본부까지 생겼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국가 수사력의 총량이 배가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손발이 묶인 검찰은 국가 중추 수사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 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이 터졌지만 6대 범죄가 아니라는 이유로 수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반쪽 규모로 출범한 공수처는 ‘황제 조사’ 논란 등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1호 수사’ 선정을 놓고 또 다시 적절성 논란에 휩싸여 우려스럽다. 공수처는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전교조 해직교사 특별채용 의혹 사건을 골랐는데, 야당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외압 등 민감한 사건을 피해갔다”고 주장했다. 여당은 여당대로 반발했다. 5선 중진 의원이 “이러려고 공수처 만들었나 자괴감이…”라고 한탄했을 정도다.

경찰 수사에 대한 국민 불안도 가시지 않고 있다. 국가수사본부장의 1호 지시로, 민변 출신의 정권 실세인 이용구 전 법무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 진상 조사에 착수했지만 110여일이 지나도록 중간 수사결과 발표는 커녕 아무 결과물이 없다. 정권 눈치를 보며 깔고 뭉갠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을 비롯한 민생 사건에서 보인 초동 수사 미흡 등으로 불신은 더 깊어지고 있다.

게다가 현행 법은 미로 같다. 같은 공무원인데도 3급 이상은 공수처, 5급 이하는 경찰이 수사하고 검찰은 4급만 수사할 수 있게 돼 있다. 누가 피의자가 되더라도 어디서 조사를 받을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이리저리로 끌려 다니며 ‘핑퐁 조사’를 받게 된다면 인권 침해 소지도 있다. 수사가 지연되고 시간적, 행정적 낭비로 국민 세금을 좀먹게 된다. 이성윤 지검장은 기소하면서 같은 사건 연루 의혹을 받는 세 명의 검사를 공수처로 이첩한 것도 복잡한 규정 때문이다.

수사기관의 존재 목적은 범죄 척결을 통한 정의 구현이다. 법무부가 합수단을 부활시켜 증권·금융 범죄 단속에 나서는 것은 현실적 필요에 앞서 당연한 의무다. 지지부진한 라임·옵티머스 관련 권력형 비리도 철저히 재수사해야 한다. 증권시장에 만연해있는 내부자 거래 등 범죄도 색출하기 바란다. 공수처는 수사사건을 선정 할 때의 기준과 원칙부터 명확히 세워야 한다. 계속 혼선을 빚으면 존폐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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