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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한풀이춤’ 이애주 교수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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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애주 교수가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의 넋을 위로하는 춤을 추고 있다. [중앙포토]

이애주 교수가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의 넋을 위로하는 춤을 추고 있다. [중앙포토]

춤으로 군사정권에 저항하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랬던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가 10일 별세했다. 74세.

고인은 1987년 6월 민주화 대행진 출정식 때 무명옷 차림으로 진혼굿을 펼쳤고, 같은 해 7월에는 반정부 시위 중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영결식에서 넋을 달래는 한풀이춤을 췄다. ‘민주화 춤꾼’ ‘시국 춤의 상징’으로 불린 이유다.

장광열 춤 비평가는 “냉혹한 현실을 현장에서 고발하고 비판한 예술가의 전형으로서 춤이 사회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면서 “고인이 ‘바람맞이 춤’이라 불렀던 시국 춤은 전통적 요소를 고수하고 활용해 불의에 저항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고 평가했다.

고인은 ‘바람맞이 춤’이라는 명명에 대해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이 따라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고인은 1970년대부터 대학가에서 문화운동가들과 함께 춤을 췄다. 전통춤의 원류인 한성준(1874~1941)의 제자 한영숙(1920~89)의 맥을 이은 그는 5세에 춤을 시작해 살풀이, 태평무를 배웠고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승무 보유자로 지정됐다. 그해부터 서울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다 2013년 정년퇴직과 함께 명예교수가 됐고, 2019년부터 경기아트센터 이사장으로 일해왔다.

그러다가 지난해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김영희 평론가는 “늘 전통과 현재를 연결하는 고민을 하면서 누구보다 전통을 지키려 했고, 전통에서 춤의 핵심을 찾아 제자를 기르는 데 심혈을 기울였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유족으로는 언니 이애령(재미)씨와 동생 이애경(무용가)씨, 제부 임진택(연출가)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2072-2010.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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