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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암호화폐 거래소, 속은 다단계…경찰, 압수수색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29일 오후 국내 거래소에서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거래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지난달 29일 오후 국내 거래소에서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거래되고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뉴스1

경기남부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는 4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암호화폐거래소 V사 본사와 임직원 자택 등 22곳을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암호화폐 거래소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면서 암호화폐 투자를 명목으로 유사수신 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회원 4만명에게서 1조7000억원 모아”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 전경.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경찰 관계자는 “회사 대표 이모씨 등의 유사수신 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과 사기 등 혐의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지난 2월 이 거래소의 범죄 연루 첩보를 입수해 수사를 진행해 왔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이 거래소는 다른 투자자를 데려오면 일정 금액을 보상해주는 다단계 방식으로 영업을 해왔다. 거래소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600만 원짜리 계좌를 최소 1개 이상 개설하도록 했으며 지난해 8월부터 최근까지 회원 4만여명으로부터 1조7000억원을 모은 것으로 조사됐다.

겉으로는 암호화폐 거래소였지만, 실제 암호화폐 거래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이들은 “가상자산에 투자해 수개월 내로 배당금 1800만원을 보장하겠다” “다른 회원을 데려오면 소개비 120만원을 주겠다” 등의 말로 회원들을 끌어모았다는 것이다.

이들의 말대로 수익이 지급되기도 했다. 이 수익금은 나중에 가입한 회원의 투자금을 먼저 가입한 회원에게 수익 명목으로 준 일종의 ‘돌려막기’ 수법이라고 경찰은 보고 있다. 입금된 돈 가운데 대부분이 돌려막기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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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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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단계 방식으로 운영된 이 거래소는 공정거래위원회에 등록된 업체가 아니었다. 경찰 관계자는 “다단계판매업을 하려면 공정위나 지자체 등에 사업 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고수익 약정과 무가치 코인에 대한 허위사실을 홍보하는 등 불법 다단계 업체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은 지난달 15일 이 업체 계좌에 있던 약 2400억원에 대한 기소 전 몰수보전을 신청했다. 몰수보전은 범죄 피의자가 확정판결을 받기 전에 불법 수익 재산을 임의로 처분하지 못하게 하는 법원 처분이다. 법원은 지난 1일 경찰의 몰수보전 신청을 인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암호화폐 열풍이 불면서 불법 다단계 사기가 암호화폐 시장에서도 흔히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인터넷에는 이 거래소로부터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머님이 아는 사람 통해서 1800만원 투자했다고 하는데 본인이 피해를 본 줄 모른다”와 같은 식이다. 지역 맘 카페에는 “지금 뒷설거지하는 단계다. 불법 다단계니 주변에서 권유받아도 절대 하지 말라” “출금이 현재 안 되고 있다. 콜센터 전화번호조차 없다” 등과 같은 글이 이어졌다.

이 업체와 관련된 단체소송 문의를 받았다는 한 로펌은 블로그를 통해 “추천 수당과 각종 수당으로 사람을 현혹하는 불법금융 다단계 사기 업체”라며 “피해자 가운데 대다수는 컴퓨터 등을 잘 못 다루는 어르신”이라고 주장했다.

이 업체 측의 해명을 듣기 위해 회사측 번호로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기가 꺼져있어 연결할 수 없다”는 안내가 나왔다. 업체 관계자들에게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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