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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 소리로 "도저히 꿈이 없어요"라던 취포자, "빵집 사장님 어때요"에 셰프 꿈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2월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남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국민취업지원제도 관련 안내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월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남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에서 한 구직자가 국민취업지원제도 관련 안내문을 읽고 있다. 연합뉴스

#남편이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일은 고사하고, 약값도 감당이 안 된다. 고3 아들 뒷바라지에 진학 걱정도 여간 아니다. 월세는 3개월 치나 밀렸다. 도시가스 공급을 정지하겠다는 독촉장이 날아든다.

올해 1월 시행된 한국형 실업부조제 #저소득층, 일자리로 끌어내는 효과 #일하는 복지 완결판…선진국엔 보편화

이쯤 되면 삶의 의지마저 꺾일 수 있다. 그도 그랬다. 김모(54)씨는 경제적 압박에 심리적 안정을 잃어갔다. 우울증에 화병까지 생겼다. 지역 고용노동센터 상담사가 김씨를 만났지만, 그에게서 희망을 찾기란 힘들었다. 정신과 치료를 권했으나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거부했다.

상담사는 "경제적 압박부터 덜어줄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밀린 월세 등을 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아 해결했다. 그제야 극구 사양하던 정신과 진료를 시작했다. 고용부의 알선으로 요양보호사 직업훈련 과정에도 들어갔다. 훈련을 받는 동안 생활비를 국가가 지원한다. 김씨의 목소리는 밝아졌다.

#최모(37·여)씨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고용보험에 가입한 이력이 없다. 취업한 적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취업할 의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전형적인 니트(NEET)족이다. 그런 그가 고용센터를 찾았다. 일거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구직 신청을 하면 돈을 준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어서다.

상담사와 마주 앉은 최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한숨만 내쉬었다. 그러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내뱉은 말은 "도저히 꿈이 없다"였다. 그런 그에게 "어릴 때 꿈이 뭐였느냐"고 묻자 들뜬 듯 "요리사"라고 했다. 상담사가 "빵집 사장님도 괜찮지 않으냐"고 하자 눈을 크게 뜨고 "될까요"라고 되물었다.

지금 최씨는 제빵 자격증을 따기 위해 직업훈련을 받고 있다. 난생처음 취업의 문을 두드리는 셈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양 음식점에 취업해 주방보조로 일하기 시작했다. "직업훈련과 별도로 하루라도 빨리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올해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한국형 실업부조제(국민취업지원제도)가 저소득층을 일자리로 끌어내고 있다. 취업하고 싶어도 생계에 쫓겨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거나 취업을 아예 접은 극한 상황에 몰린 구직자에게 생계비를 주면서 종합고용 컨설팅을 하는 제도다. 저소득 구직자의 문제점을 파악해 심리상담, 직업훈련, 맞춤형 직업알선까지 토털 솔루션을 제공한다. 취업하기 전까지는 6개월 동안 매달 50만원도 지원한다. 생활고를 덜어주고, 구직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필요하면 지자체와 함께 복지서비스를 별도로 제공한다. 취업에 필요한 돈으로 190여 만원도 지원한다.

남편과 사별하고 아이 둘을 홀로 키우는 박모(52)씨는 올해 2월 국민취업지원제도에 참여해 두 달 만에 중소기업의 생산직으로 취업했다. 면접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자 상담사가 회사의 채용 면접에 동행했다. 박씨는 "이제 큰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됐다. 새 세상을 사는 듯하다"고 말했다.

실업부조제는 '일하는 복지'를 지향하는 고용 안정 복지체계의 완결판이다. 퍼주기식 복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선진국에선 오래전부터 시행됐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 교수는 "국민취업지원제도의 수혜계층은 저소득층"이라며 "이를 고려하면 지원금(매달 50만원)을 더 올려 구직활동 시 생계 걱정을 실질적으로 덜어주는 등의 후속 보완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특히 직업훈련 체계와 직업 상담사의 전문성 강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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