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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가 주목한 '문어 선생님'…문어도 정서적 고통을 느낀다

중앙일보

입력

제93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크레이그 포스터가 문어와 교감을 나누는 모습. 넷플릭스

제93회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크레이그 포스터가 문어와 교감을 나누는 모습. 넷플릭스

상어를 피해 돌 틈 깊숙이 숨는 문어 한 마리. 그때 문어를 발견한 상어가 다리 하나를 꽉 물더니 그대로 뜯어내 버린다. 그렇게 다리 하나를 잃어버린 채로 간신히 살아남은 문어. 그리고 그 모습을 애타게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사람과 문어 사이의 따뜻한 우정을 그린 넷플릭스의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문어 선생님’의 한 장면이다. 이 영화는 최근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차지했다.

이 영화를 연출한 피파 에를리히는 수상 소감에서 “이 영화는 아프리카 끝에 있는 바다 숲에서 일어난 소소한 개인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좀 더 보편적인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다른 관계를 엿볼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크레이그 포스터가 문어와 교감을 나누는 모습. 넷플릭스

'나의 문어 선생님'에서 크레이그 포스터가 문어와 교감을 나누는 모습. 넷플릭스

그의 말대로 '나의 문어 선생님'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한 해안가에서 매일 문어를 관찰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다이버인 크레이그 포스터는 불면증까지 생길 정도로 일에 지쳐가던 어느 날 바다 숲에서 암컷 문어 한 마리를 만난다. 그는 매일 바다에 들어가 문어의 일상을 관찰하면서 깊은 위안을 얻는다. 문어도 역시 포스터가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는 판단이 선 듯 어느 날 다리를 쭉 뻗어 그의 손을 감싼다.

우여곡절 끝에 1년여 동안 우정을 이어오던 둘은 상어가 문어를 물고 사라지면서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게 된다. 문어를 선생님으로 불렀던 그는 인터뷰에서 “아직도 (문어가) 보고 싶다”며 울먹거린다.

이 영화에 대해 사람들은 “이제 문어 숙회는 끊어야겠다. ㅜㅜ”는 댓글을 남기는 등 사람과 문어의 정서적 교감이 감동적이면서도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문어, 정서적 고통 느낀다”

눈을 감고 있는 문어. AP=연합뉴스

눈을 감고 있는 문어. AP=연합뉴스

실제로 문어는 위기 상황에서 주변 환경을 모방해 위장술을 펼칠 정도로 똑똑한 생물체이다. 각종 연구에 따르면 문어가 속한 두족류는 무척추동물 가운데서도 가장 뛰어난 지능을 지녔다.

문어는 높은 지능뿐 아니라 감정을 지닌 동물이란 연구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국제학술지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발표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 연구팀은 문어가 신체적, 정서적으로 고통을 느낀다는 걸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연구팀은 문어를 대상으로 조건화된 장소 선호 실험을 수행했는데, 이는 쥐가 고통을 겪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 결과, 문어 역시 포유동물과 같은 행동 패턴을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문어를 대상으로 조건화된 장소 선호 실험을 진행하는 모습. 로빈 크룩

문어를 대상으로 조건화된 장소 선호 실험을 진행하는 모습. 로빈 크룩

두 개의 공간 중 선호하는 공간에 있을 때 고통을 준 뒤에, 다시 선택권을 준다면 문어는 계속해서 원래 선호하지 않았던 방으로 가는 행동을 보였다. 이런 통증 실험을 통해 문어가 유해한 자극과 연관된 장소를 피하는 습성을 발견했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연구팀은 “실험에서 문어는 통증이 경험되는 맥락을 피하고, 통증이 완화되는 것을 경험하는 장소를 선호했다”며 “문어가 고통의 정서적인 요소를 경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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