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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관 승진 軍경력 왜 빼" "미필 남자는?"···男男갈등 터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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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기획재정부는 1월 모든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직원 승진심사 자격 요건에 군 복무기간을 포함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따라 일부 공공기관이 군 경력을 승진에 필요한 최소 근무 연한에서 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자 청와대 국민청원 등에서 “군필 남성을 역차별한다”며 “군 경력을 인정해 달라”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공공기관에서 직원을 승진시킬 때, 군 경력을 인정해야 할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①군대 다녀온 사람이 월급은 더 받았다

일부 공공기관이 군 복무기간을 승진 요건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 용산역에서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선 군인. 연합뉴스

일부 공공기관이 군 복무기간을 승진 요건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며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 용산역에서 4·7 재·보궐선거 사전투표를 하기 위해 줄을 선 군인. 연합뉴스

24일 복수의 공공기관에 따르면 승진심사 지원 자격에 군 복무기간을 포함해 계산하는 공공기관은 전체 340여개 중 15개뿐이다. 정부부처는 물론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군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최근 한국전력공사는 군 경력을 승진 요건에서 빼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수력원자력도 마찬가지다. 대신 군필자의 승진 시험 응시 자격을 1년 앞당겨 주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공기업은 군필 직원의 급여에선 그대로 군 경력을 인정한다고 밝혔다. 같은 연차라도 군필 직원에 더 많을 월급을 준다는 이야기다.

‘제대군인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기관 등은 군필자의 호봉이나 임금을 결정할 때 군 복무기간을 근무경력에 포함할 수 있다. 군 경력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이미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②군 경력 인정하면 법 위반 가능성

한전과 한수원이 군 경력 배제를 검토하자, 군필자가 미필자보다 제대 후 정년까지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 짧기 때문에 이를 인정해야 공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민청원 청원인은 “1년 8개월 동안 국가를 위해 공무원의 신분으로서 봉사하고 돌아와 다른 미필자보다 사회에서 일하는 기간이 줄어든다는 것이 부당하다”며 “1년 8개월을 군인 공무원으로서 근속한 경력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은 결국 군필자가 미필자보다 최소한 1년 8개월 동안 공공기관에서 근무할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일부 직장에선 내부적으로 군 경험을 근무 경력으로 인정해 줬다. 그러나 이런 계산법은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남녀고용평등법)’에 저촉할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해석이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승진에서 남녀를 차별할 수 없다. 같은 조건으로 모집ㆍ채용했더라도 여성이 군 복무를 하지 않아서 군필 남성보다 2년 늦게 승진하면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

헌법에 따라 가장 기본적인 근로기준을 정한 ‘근로기준법’도 근로자의 성별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게 규정한다. 앞서 기재부는 “법률 위반일 수 있다는 해석을 전달한 것”이라며 “규정 개정을 강제한 것이 아니라 관련 제도를 개선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③오히려 男·男 갈등 유발할 수도

지난달 서울 성동구청에서 열린 백신접종센터 운영 모의 훈련에 참가한 군인. 뉴스1

지난달 서울 성동구청에서 열린 백신접종센터 운영 모의 훈련에 참가한 군인. 뉴스1

국회에선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채익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할 것 없이 공공기관 승진에 군 경력을 포함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고 있다. 전 의원은 “(기재부의 가이드라인은) 아무런 의견 조율 없이 이뤄진 부당한 행정 집행”이라며 “의무복무자가 병역의무에 준하는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원인도 “정부는 군필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정년 연장’ 또는 그에 상응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2013년 국가보훈처와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의무복무자의 정년을 최대 3년 연장하는 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제19대 국회는 임기가 끝날 때까지 해당 법률안을 계류시키다 폐기했다.

한 공공기관 직원은 “이미 군필 혜택을 받아서 승진한 고연차 남성 직원과 앞으로 혜택이 사라지는 저연차 직원 사이의 불평등이 생기는 것 아니냐”며 “성차별이라기보다 남성 직원 간 갈등이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군 경력 인정이 여성 직원뿐만 아니라 일부 미필 남성 직원에 대한 차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젊은 직장인을 중심으로 조직 내 보상체계 등의 문제를 조직화해 표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군 경력 인정 논란 역시 오래된 관행과 제도가 개선되는 과정에서 손해를 본다고 느끼는 집단의 불만이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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