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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못 잡고 공직자에 손가락질…정부 정책 신뢰 잃었다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과 서울 아파트 평당 시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과 서울 아파트 평당 시세.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불이 났는데, 불씨는 찾지 못하고 불을 키운 바람만 탓하고 있다.”

[취재일기]

4년 내내 부동산 투기 세력과의 전쟁을 벌여온 문재인 정부가 새로운 투기 근절대책을 내놓는 데까지는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투기 의혹이 터지며 폭발한 민심을 얼른 달래야 한다는 인식에 20개의 투기 방지책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하지만 집값 상승에서 비롯한 불길은 여전하다. 정부가 집값(불씨)은 잡지 못한 채 공직자 투기(바람)만 문제 삼았기 때문이라는 전문가(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의 지적이 공감이 간다.

LH 사태는 그동안 쌓인 불만에 기름을 더 부었을 뿐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서울 집값은 투기를 저지른 LH 직원들이 올린 게 아니다. 정부가 25차례에 걸쳐 발표한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은 계속 올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지난 2017년 5월 이후 서울의 30평형 아파트 한 채 값은 약 5억원이 올랐다.

정부가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시장은 잠깐 잠잠한 듯하다가도, 결국 집값은 오르고 또 올랐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정책에 대한 믿음은 점점 떨어졌다. 집 없는 청년은 더 조급해졌고, 땅 없는 중·장년은 더 억울해졌다. 이런 와중에 LH 사태는 정부가 보여줬던 시장 안정화의 의지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다.

160만명에 이르는 공직자와 그 가족까지를 대상으로 한 이번 대책에는 ‘사실상 26번째 부동산 대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번에도 그동안 숱하게 나온 대책 중 하나쯤으로 그친다면, 투기 열풍 역시 잠깐 식었다가 다시 불어닥칠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대책에 면역이 생겨버린 국민에게 ‘투기 못 하게 하겠다’는 메시지는 오히려 ‘얼른 집과 땅을 사야겠다’는 심리만 자극할 수 있다.

공직자의 직업윤리는 기본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집값, 땅값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부패는 또 터질 수 있다. 제3자를 통한 차명 거래는 어떻게 막아낼 것이며, 미공개 정보를 활용한 투기인지 개인적 판단에 따른 투자인지는 어떻게 갈라낼 건지에 대한 우려가 벌써 나온다.

윤리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한 대가만으로는 치솟는 집값을 따라잡기 어려운 불공정의 시대다. 한쪽에선 전·월세 상승 폭을 5%로 제한한 상한제 시행 이틀 전에 전세보증금을 14% 올리기도 했는데, 다른 한쪽에선 부동산을 새로 사지도 말라(공직자 부동산 신규취득 제한제)고 한다. 화를 키운 ‘부동산 적폐’를 도려낸다고 했으니, 부동산 불공정을 잡을 능력이 있는지 이제 정부가 증명할 시간이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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