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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러시아 백신 도입 두고 이재명에 맞짱 뜨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자신의 저서 '수상록'에서 "우리 미래 세대가 지금 우리 세대보다 더 잘사는 나라, 이것이 정세균의 정치"라고 적었다. 오종택 기자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자신의 저서 '수상록'에서 "우리 미래 세대가 지금 우리 세대보다 더 잘사는 나라, 이것이 정세균의 정치"라고 적었다. 오종택 기자

“러시아산 백신 도입은 지난해 이미 보건복지부에서 검토했었다. 마치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청와대에 공박하듯이 제안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지난 22일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이재명 경기 지사의 러시아산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V’ 도입 제안을 재차 일축했다. 전날 MBN 인터뷰보다 메시지는 더 선명해졌다. 정 전 총리는 “현재 백신 물량은 충분하다. 정부도 화이자 백신을 추가로 구매하거나 도입을 앞당기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다”며 “지방정부 수장이라면 이런 걸 다 알아야 하는 내용이고 보고도 받았을 거다. 여당의 도지사가 청와대에 대고 얘기할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지사는 지난 19일 청와대에 러시아산 백신 도입을 제안했다.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 도입을 신속하게 하는 데 (스푸트니크V 도입 시도가) 지렛대로도 활용될 수 있다”(지난 21일)면서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대표 후보인 송영길 의원이 “ ‘플랜B’ 추진도 필요하다”며 거들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새로운 백신 도입 가능성에 대해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정부는 안전성 검증에 들어갔다.

정세균의 백신 계획

지난 16일까지 방역 총책임자(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였던 정 전 총리가 스푸트니크V 도입에 부정적인 건 올해 하반기까지 백신 수급 계획인 ‘플랜A’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정부는 국내인구(5182만명)보다 많은 총 7900만명분의 백신을 올해까지 도입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백신 공동구매 국제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1000만명분을 확보했고, 개별 제약사와는 6900만명분을 계약했다. 아스트라제네카 1000만명분, 화이자 1300만명분, 얀센 600만명분, 모더나 2000만명분, 노바백스 2000만명분이다.

정부는 ‘4월 300만명→6월 1200만명→9월 3500만명’ 접종 계획도 세웠다. 상대적으로 보관이 용이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장소를 현재 보건소 위주에서 병·의원으로 확대해 하반기부터는 접종률이 크게 높일 계획이다. 정 전 총리는 인터뷰에서 “백신 도입이 지금 약간 늦어지는 경우 있지만, 차근차근 들어오고 있다”며 “9월 말 3500만명 이상 백신 접종을 받으면 세계에서 방역뿐만 아니라 백신 접종도 잘한 나라가 될 거란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차기 대선 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중앙포토

민주당 차기 대선 주자인 정세균 전 국무총리(왼쪽)와 이재명 경기지사. 중앙포토

스푸트니크V의 안전성 문제도 정 전 총리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스푸트니크V는 혈전 부작용이 드러난 아스트라제네카·얀센 백신과 같은 전달체 방식이어서 도입 후 부작용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 총리’ 재평가 기대

일일 확진자 700명을 오르 내리는 최근 상황은 총리 재임기간 대부분을 방역에 올인했던 정 전 총리의 대선 행보에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감안해 퇴임 후 정 전 총리는 “당분간 조용히 지내겠다”고 주변에 말하기도 했지만 이 지사의 러시아산 백신 도입 주장이 그를 조기에 마이크 앞으로 끌어낸 셈이 됐다. 정 전 총리 측 인사는 “국내 정치인 중 정 전 총리만큼 백신에 대해서 잘 아는 이도 드물 것”이라며 “러시아 백신을 도입 주장 자체가 국민들의 불안감만 키울 뿐 실익이 없다는 게 정 전 총리의 굳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노바백스 백신의 유럽 허가 지연, 얀센 백신의 부작용 논란 등으로 여유분 수급에 차질이 생긴 건 맞지만 접종계획이 뒤틀일 정도의 문제는 없다는 게 정 전 총리의 판단이다. 정 전 총리도 23일 CBS라디오에서 “(백신 도입은) 공짜가 아닌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며 “여론에 막 휩쓸리지 않고 정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계획대로 라면 백신 접종률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6월은 민주당 대선 경선 개시(7월) 시점과 맞물려 돌아가게 된다. 정 전 총리와 가까운 한 재선 의원은 “백신 접종 계획은 정 전 총리가 재임 시절 사활을 걸고 검토·재검토를 반복해 수립한 것”이라며 “코로나19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걷힐 무렵이면 정 전 총리의 재임기간 1년3개월도 재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14일 정 전 총리가 취임한 지 엿새 만에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2월 종교단체에서 퍼진 대구 지역 코로나 유행 당시 그는 3주간 대구에 상주하면서 현장 방역을 챙겼다. 지난해 3월 마스크 구입 ‘2부제’를 주장하는 다른 국무위원과 격론 벌여 ‘5부제’(5일 간격 마스크 구매 허용)를 도입해 큰 혼란 없이 마스크 대란을 이겨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 3월 26일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았다. 뉴스1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 3월 26일 서울 종로구보건소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맞았다. 뉴스1

한국갤럽 여론조사(4월 13~15일)에서 올해 첫 조사대상이 된 정 전 총리 지지율은 1%였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정 전 총리 측 인사는 “마의 7%를 넘으면 점점 오를 것”이라며 “곧 이 지사와의 확실히 차별화된 정책을 부각하며 당내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거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대선 어젠다 중 성장 담론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한다. 기업인 출신인 만큼 규제혁신을 통한 기업 살리기와 관련해 이 지사보다 나은 어젠다도 내놓겠다는 생각이다. 정 전 총리와 가까운 한 의원은 “외교·안보·복지 등 전방위적인 정책에서도 이 지사와는 다른 색깔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내달 중순 대선 출마선언을 통해 본격적 대선 행보에 나설 계획이다. 이달 말까지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영남→호남’ 순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지역 기반도 다질 예정이다.

김효성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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