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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지향적 대일 접근법 탓에 한·일 관계 악화, 대전환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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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호 12면

“최악의 중증 다중 복합골절.”

한일비전포럼 TF 첫 회의 #과거사 문제는 외교 영역서 다뤄야 #차기 정부가 신뢰 구축할 기반 시급

23일 한일비전포럼 산하 한일미래비전워킹그룹 첫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 들어 악화일로를 걷는 한·일 관계를 이같이 표현했다. 위안부·강제징용 문제 등 과거사 갈등에 이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 방류 결정에 이르기까지 갈등 사안이 누적되면서 양국 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까지 악화했다는 지적이다. 한일미래비전워킹그룹은 대선을 1년여 앞두고 한·일 관계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출범한 태스크포스(TF) 회의체다.

이날 사회를 맡은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을 “선택을 외면하고 원칙을 포기한 외교”로 규정했다. 특히 “한·일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교착 국면을 맞은 것은 한국 정부의 대일 접근법이 갈등 지향적이었기 때문”이라며 “한·일 관계에 대한 역발상적 접근이 없이는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선 공간·시간·서열 등의 측면에서 기존의 접근법과는 다른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일본에 대해 공간적으로는 한반도에 갇힌 접근을, 시간적으로는 과거사 문제에 갇힌 시각을, 서열의 관점에선 한국이 일본에 비해 상대적 약자고 여전히 피해자라는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윤덕민 한국외국어대 석좌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북한 문제가 대일 정책의 변수로 작용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윤 교수는 “최근 문재인 정부가 갑자기 일본에 대해 유화적 태도로 돌아선 것은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과 관계 개선에 나서기 위한 전략이란 시선이 있었다”며 “일본 입장에선 북한 문제에 따라 대일 정책이 요동친다고 느끼며 한국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재정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는 최근 1년을 ‘한·일 관계의 격동기’로 규정했다. 일본과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오히려 한국의 국내적 이슈로 인해 한·일 갈등이 한층 격화됐다는 주장이었다. 정 교수는 상호 충돌하는 두 건의 위안부 피해 배상 판결 등을 거론하며 “지난 1년간 발생한 국내 이슈의 결론은 과거사 문제를 사법적 영역에서 해결하기보다는 외교적 노력으로 풀어야 한다는 시그널”이라며 “문재인 정부로서는 과거사 문제가 외교의 영역으로 넘어오면서 운신의 폭이 넓어졌는데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토론에선 한층 냉정한 평가가 이어졌다. 김재신 전 외교부 차관보는 “지나친 여론 중심의 대일 정책 운용은 국익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고,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 성향의 한국 586세대와 일본의 전통적인 우파 그룹이 지향하는 세계관이 충돌하면서 한·일 관계가 악화했다”고 진단했다. 양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남은 1년간 차기 정부가 한·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고 상호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차기 정부에서도 초반부터 일본과 갈등 국면으로 시작한다면 상황이 개선될 여지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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