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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 고민하게 한 의외의 수치…은퇴세대, 세금의 역습?

중앙일보

입력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집값이 급등하면서 은퇴 세대를 중심으로 재산세 지출이 크게 늘었다. 중앙포토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집값이 급등하면서 은퇴 세대를 중심으로 재산세 지출이 크게 늘었다. 중앙포토

통계청은 최근 지난해 말 나온 세금지출 관련 통계에서 이례적인 수치를 발견했다. 지난해 소득 수준이 높지 않은 2·3분위 계층에서 세금에 쓴 돈이 전년보다 각각 11.1%와 7% 급증했기 때문이다.

20일 통계청 '2020년 가계금융복지 조사'를 보면 지난해 전체 가구당 평균 세금지출(357만원)은 2019년(354만원)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다. 같은 기간 5분위 계층은 오히려 세금에서 쓴 돈(1332만원→1326만원)이 줄었다.

통상 세금이 늘어나면 5분위나 4분위 고소득층 세금지출이 더 많이 증가하거나 비슷한 수준이라도 늘어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엉뚱하게 지난해 소득이 적은 계층(2·3분위)에서만 세금지출 증가 폭이 크게 나타난 것이다.

통계청이 잠정적으로 꼽은 이유는 2가지다. 우선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재산세 지출 증가다. 통계청 분석 결과 2·3분위 계층은 다른 소득 계층보다 재산세 지출 비중이 더 컸다.

통계청 관계자는 “은퇴한 고령자들이 소득이 줄면서 2·3분위 계층에 많이 편입됐는데, 최근 집값이 오르면서 이들의 재산세는 오히려 더 늘었다”면서 “최근 은퇴 세대는 자가보유비율이 높기 때문에 재산세 지출이 더 커진 측면이 있다”고 했다. 소득 5분위는 보유한 '재산'이 아닌 벌어들인 '소득'을 기준으로 분류한다.

집값뿐 아니라 인구구조 문제도 있다. 지난해는 한국 역사상 인구수가 가장 많은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가 생산가능인구(만15세~만64세 이하)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한 첫해다. 이들은 다른 노년 세대보다 부동산 등 자산 축적 정도가 높다.

이들이 본격 은퇴 전선에 들어가면서 자산은 유지한 채 소득만 감소하는 이른바 '가난한 자산가'가 된 것이다. 벌이는 줄어드는 데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세금만 느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였다.

통계청 해석이 맞다면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본격적으로 '법적 노인'이 되면서 오는 2028년까지 매년 60~70만명씩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 소득은 없는데 세금만 늘어나는 계층이 더 많아진다는 얘기다.

재산세 산정 기준이 되는 정부 공시가격 인상 정책은 이런 현상을 더 부채질한다. 정부는 오는 2030년까지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시세 대비 90%까지 올리는 목표다. 이미 올해 전국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전년 대비 평균 19.8% 올랐다. 14년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늘어난 보유세 부담이 급격히 올라간 집값을 잡는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특히 은퇴로 소득이 줄어든 베이비부머 세대에게는 세금 부담이 집을 팔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커지는 고령층 빈곤율을 고려한다면 실거주 목적의 1가구 은퇴자에게는 세 부담을 경감해 줘야 한다고 지적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1주택자는 어차피 집값이 올라도 집을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세 부담을 감면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세종=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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