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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제물포고·부산남고…원도심 명문고들, 신도시 이전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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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인천제물포고 전경. 사진 인천제물포고 제공

인천제물포고 전경. 사진 인천제물포고 제공

인천의 명문 제물포고는 오랜 기간 머물렀던 웃터골을 떠날지를 고민하고 있다. 웃터골은 1954년 제물포고가 자리 잡은 인천시 중구 전동의 마을 이름이다. 개교 70여년 만에 이사를 고민하는 건 최근 5년간 학생 수가 100명 넘게 줄어들어서다. 학교 쇠락을 우려한 제물포고 동창회가 수차례 이전을 건의했고 인천시교육청이 최근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제물포고를 옮기고 그 자리에 인천교육복합단지를 세우는 게 골자다. 이전 예정지로는 송도국제도시가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학교 이전이 원도심 공동화를 부른다”며 반대하고 있다. 인천교육희망네트워크는 “제물포고 이전이 원도심 교육 불평등을 심화할 것”이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70여년 전통 원도심 명문 고교 #학생수 모자라 신도심 이전 발표 #원도심선 ‘인구 유출 가속’ 반발 #수원 120여년 된 신풍초도 광교로

아파트 단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원도심의 학교들이 학생 수 부족을 이유로 신도시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학교는 많은데 학생 수가 적은 원도심과 그 반대 상황인 신도심의 이해관계는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교육부가 학생 수가 줄어 빈 교실이 늘어난 지역이라도 기존 학교를 이전·재배치한 경우에만 학교 신설비를 시도 교육청에 교부하기로 하면서 학교 이전 현상은 늘어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학교 이전이 원도심 공동화를 부채질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전 추진 중 반대 만난 부산남고

부산남고 폐교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부산남고 폐교 반대 공동대책위원회=연합뉴스

부산남고 폐교 반대 공동대책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 부산남고 폐교 반대 공동대책위원회=연합뉴스

부산에서는 영도구 부산남고가 이전을 추진한다. 1955년 개교한 부산남고는 지역 내 둘뿐인 남고다. 최근 10년간 학생 수가 597명에서 336명으로 줄었다. 부산시교육청은 학교 인근 개발상황, 통학 여건을 고려해 학교를 부산 강서구 명지국제신도시로 옮기기로 했다. 영도구, 강서구 등이 묶인 서부 학교군의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 명지신도시는 학생 수가 늘어나는 점을 고려했다. 학부모 과반수가 동의하면서 이전 요건을 갖췄지만 일부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닥쳤다. 부산남고가 이전하면 인구 유출이 더 심화하고 영도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줄어든다는 게 반대 측의 주장이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2024년 이전을 목표로 했지만 이전 관련 설명회 등으로 주민들과 조율 중이라 예정보다 이전이 늦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 이전 120년 역사 초등학교

과거 수원 행궁동에 있던 수원 신풍초등학교. 신풍초는 조선시대 정조 때 지어진 수원 화성행궁 내 우화관 자리에 1896년 개교했다.

과거 수원 행궁동에 있던 수원 신풍초등학교. 신풍초는 조선시대 정조 때 지어진 수원 화성행궁 내 우화관 자리에 1896년 개교했다.

경기도 수원의 신풍초는 우여곡절 끝에 학교를 이전했다. 1896년 개교한 신풍초는 8년 전 수원 팔달구 행궁동에서 수원 광교신도시로 옮겼다. 2011년 수원시는 화성행궁 복원 사업을 위해 객사 우화관(于華館)터에 지어진 신풍초를 이전하려 했다. 행궁동은 도심 공동화로 학생이 줄고 있었다. 광교신도시엔 새 학교가 필요했다. 신풍초 이전에 힘이 실렸지만, 총동문회와 학부모는 “우화관 복원을 위해 120년 역사의 학교를 옮기면 안 된다”며 반대했다. 이듬해 수원교육지원청은 신풍초를 광교신도시로 이전하고 행궁동 학교는 재학생이 모두 졸업하기 전까지 분교로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이전 후 15학급으로 줄었던 학생 수가 52학급으로 늘었다. 김기범 신풍초 교감은 “학교 역사가 끊겼다는 반응도 동문 사이에서 나온다”며 “광교의 신풍초는 이름만 같은 새 학교라 여기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학령인구 감소 맞게 유연한 관점 필요”

지난해 인천 신도심 내 남동구 장서초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사진 인천시교육청

지난해 인천 신도심 내 남동구 장서초등학교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사진 인천시교육청

교육계에선 줄어드는 학령인구에 맞춰 학교 이전 등에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성천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교수는 “동네마다 초·중·고교가 하나씩 있으면 좋겠지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며 “학교 신설이 까다로워진 만큼 학교 이전, 초·중·고교를 연계한 통합 모형 등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학급당 인원수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다”며 “지자체와 교육청이 학교이전으로 생기는 학생들의 통학 문제 등도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석용·최모란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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