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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가게에 노래방·이층침대, 선글라스 매장에 SF세트장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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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 매장 한가운데 탈의실 문을 열면 노래방이 등장한다. 또 다른 탈의실 내부에는 이층 침대가 놓여있고 한쪽 벽에는 달리는 기차 속 장면이 재생 중이다. 커피숍에 가려면 재즈가 흐르는 호텔 복도를 지나 객실을 통과해야 한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처럼 문을 열 때마다 전혀 다른 세상으로 순간 이동한다.

업체들, 체험형 공간으로 차별화 #쇼핑 아닌 전시 등 ‘놀이’에 초점 #쇼핑·엔터 경계 점점 더 모호해져 #“주요 브랜드 입소문 마케팅 노려”

아더에러 매장 한가운데 놓인 탈의실. 유지연 기자, [사진 각 업체]

아더에러 매장 한가운데 놓인 탈의실. 유지연 기자, [사진 각 업체]

오는 10일 신사동 가로수길에 문을 여는 패션 브랜드 아더에러의 세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아더스페이스 3.0’ 얘기다. 단순히 옷·가방 쇼핑이 아니라 전시와 체험 등 ‘놀이’에 초점을 맞췄다.

우주에서 영감을 얻은 그래픽 아트, 계단 벽과 천장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 움직이는 거울과 선반 등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탄성을 자아내는 예술 작품들이 5층짜리 건물을 가득 채웠다.

아더에러 매장의 노래방. 유지연 기자, [사진 각 업체]

아더에러 매장의 노래방. 유지연 기자, [사진 각 업체]

아더에러 관계자는 “온라인숍만으로는 우리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며 “당장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이 공간 자체가 매출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투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서울 종로구 삼청동길의 전통 한옥에 들어선 아이스크림매장 삼청 마당점. 아이스크림 체인점 배스킨라빈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 유행하던 지난해 10월 말 문을 연 매장이다.

배스킨라빈스가 지난해 10월 문을 연 ‘삼청마당점’. 유지연 기자, [사진 각 업체]

배스킨라빈스가 지난해 10월 문을 연 ‘삼청마당점’. 유지연 기자, [사진 각 업체]

배스킨라빈스는 앞선 7월에는 서울 한남동에 카페형 매장인 ‘하이브 한남’을 개장했다. 전통을 강조한 삼청 마당점과 대조적으로 미국의 유명 디자이너 프란체스카 케이폰 등과 협업해 미 캘리포니아의 역동적인 이미지를 담은 공간으로 꾸몄다.

삼청 마당점의 흑임자·옥수수 아이스크림이나 하이브 한남의 유기농 아이스크림은 다른 곳에서 맛볼 수 없는 특화된 제품이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 탓에 파리만 날리던 두 매장은 올들어 20~30대 사이에 ‘핫플레이스’로 인기를 끌면서 월 매출이 전년보다 각각 40~60%씩 증가했다.

김현호 SPC그룹 기획마케팅차장은 “요즘은 아이스크림도 매장 대신 온라인몰에서 배송시켜 먹는 시대”라며 “하지만 가치 있고 색다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꾸며놓으면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 방문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지난해부터 온라인(비대면) 쇼핑이 확산하고 있지만 오프라인 체험 공간에 공을 들이는 업체가 오히려 늘고 있다. 상품만 진열하던 기존 매장과 차별화해 독특한 컨셉트를 내세워 체험형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공간이 늘어나는 이유다.

지난달 문을 연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도산공원 매장도 미래 세계를 구현한듯한 공간 구성으로 화제를 모았다. 6족 보행 로봇,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묘사했다는 로봇 팔, 폭격을 맞은 듯 무너진 건물 잔해 등 SF 영화 세트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젠틀몬스터 측은 “고객에게 낯설고 놀라운 경험을 주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특별한 공간에서 브랜드를 알리는 공간 마케팅은 10여년 전에는 주로 패션분야에서 활용됐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식품·음료, 화장품 등 소매업종으로 확대한 게 특징이다

동서식품은 2018년 서울 이태원에 커피 맥심 브랜드를 알리는 8층짜리 카페형 문화공간을 세웠다. 동서식품 마케팅 담당자는 “식음료 업체 사이에 2~3년 전부터 젊은 세대에게 브랜드를 어필하기 위해 체험형 공간을 만드는게 유행처럼 번졌다”며 “코로나19로 지난해 주춤했다가 올해 들어 다시 확대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오뚜기의 복합문화공간 ‘롤리폴리꼬또’. 유지연 기자, [사진 각 업체]

오뚜기의 복합문화공간 ‘롤리폴리꼬또’. 유지연 기자, [사진 각 업체]

오뚜기도 지난해 12월 서울 논현동에 ‘롤리폴리꼬또’라는 복합문화공간을 열었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벽돌 10만장을 쌓아 만든 건물로 1층엔 오뚜기 카레와 라면을 파는 식음 공간, 2층은 전시형 카페로 만들었다. 이곳은 오뚜기가 거의 홍보를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오며 매출도 매달 30%씩 늘고 있다.

미샤가 운영 중인 카페 ‘웅녀의 신전’. 유지연 기자, [사진 각 업체]

미샤가 운영 중인 카페 ‘웅녀의 신전’. 유지연 기자, [사진 각 업체]

화장품 브랜드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는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인사동 매장을 폐점하고, ‘웅녀의 신전’이라는 카페를 운영 중이다. 매장 내외부는 동굴 같은 분위기를 구성했고, 쑥을 원료로 한 음료를 판매한다. 아모레퍼시픽은 2019년 성수동에 체험형 뷰티매장인 ‘아모레성수’를 열었다.

이렇듯 코로나19 장기화에도 새롭게 문을 여는 오프라인 매장은 소비자 체험에 방점을 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쇼핑은 오히려 뒷전이다. 누구나 와서 구경하고, 만져보고, 먹고 마시고, 쉴 수 있는 공간에 더 가깝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여전한 이 시기에 패션·화장품·유통업체가 오프라인 매장 투자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는 오랜 ‘집콕’에 지친 소비자가 보복 소비에 나서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올해 본격적으로 수혜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해부터 비대면 쇼핑, 온라인 시장에 주목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지만 줄 서는 맛집과 카페의 인기는 전혀 식지 않았고, 올해는 더 잘 될 것으로 보인다”며 “고객에게 재미있는 볼거리와 경험을 제공해 ‘시간’을 점유하는 매장이 곧 ‘돈’을 점유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비 트렌드 분석가 이정민 트렌드랩506 대표는 “지금 브랜드의 성패는 바이럴(입소문) 싸움에 달렸다”며 “이미 눈이 높아진 소비자에게는 기존 유통 상식을 뒤엎는 마케팅 전략을 가진 브랜드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정·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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