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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의 사랑방, 우행원정신과

중앙일보

입력

우행원 정신과를 찾아 나선 길에 있는 동대문 시장, 서울시의 대대적인 청계천 공사의 영향 탓인지 불경기임에도 예년보다 더 북적거리는 느낌이다. 버스를 타고 6호선 동묘역에서 내리니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이대 동대문병원에서 오랜 시간 재임하시다 올해 2월 정년 퇴임한 우 원장은 자신을 보고 혹여 올 환자들을 생각해 동대문병원 근처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했다고 한다.

동대문의 입지가 다소 어수선하여 정신과 진료에 적합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은 들었으나 오래 만나오던 환자들을 대하는 의사의 깊은 배려가 느껴져 초반의 느낌은 금새 무색해졌다. 게다가 한국경제의 산실 같은 곳인 이 곳 동대문의 특성상 어려운 경기로 인해 고개를 떨구고 누군가와 속 깊은 이야기로 하고 싶은 이들이 일하는 현장 가까운 곳에 있는 정신과를 차리고 보니 사람들이 힘들면 쉽게 이곳을 찾아 든다고 하니 그 품이 동대문시장 만하게 다가온다. 정신과로써 이만한 입지도 없다 싶다.

중점적으로 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

다들 쉬고 싶어할 나이에 개원이라는 젊은 의사들도 쉽게 내리지 못하는 결정을 정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각박한 세상살이에 먹고 살기 힘들거나 자식이 건사를 해주지 않아서 그럴 리도 없을 터, 굳이 힘든 길을 선택한 이유가 무척 궁금해졌다. 어떻게 개원을 하시게 되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우원장은 기다렸다는 듯 유쾌한 음성으로 답을 시작했다.

“미국 UCSF에서 노인정신의학을 공부한 게 이 출발의 시작이라 할 수 있고 평소에 노인정신건강에 대한 주장에서 나이가 들어도 일을 하는 것이 좋고 일도 자원봉사보다는 보수를 받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젊고 건강하게 살면서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게 해준다고 했죠. 그렇게 말해오던 제가 정작 은퇴해서 여행이나 다니고 쉬고 있으면 말이 안되겠죠. 직접 모범을 보임으로써 제 주장이 맞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앞으로도 노인정신의학을 더 집중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우원장은 노인 연령층이 많아지는 요즘, 노인은 육체건강뿐만 아니라 정신건강에서도 너무 많이 소외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한국의 노인들은 자신보다 자식의 체면을 더 생각해서 병원엘 와도 자식이 있는 자리에서는 마음을 잘 안 연다고 한다. 그러다 자식이 자리를 비우면 힘든 마음을 풀어내다 결국엔 눈물까지 짓는다고. 노인정신건강에 대한 짧은 설명을 들으며 요즘은 사회문제로까지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노인들의 복지관련 이슈가 우원장처럼 일선에서 일하는 분들을 통해 사회에 제대로 전달되어지게 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취지를 갖고 있어서인지 노인정신건강에 대한 진료를 위해 찾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그 외에 부부문제, 경제적인 어려움, 우울증 등의 문제가 많다고. 특히 요즘 경기 탓인지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상담을 해오는 이들에겐 ‘mind therapy 가 아니라 money therapy ‘가 답이란 생각이 든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개원해서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은…

다른 개원 정신과와 마찬가지로 대학교수로써 지내온 때와 달리 우원장이 현실에 눈을 뜨는 건 당연히 의료수가 문제였다. 처음엔 이런 현실을 모르고 대학병원에서 쓰는 최신 치료약을 처방 해주니 치료비용이 많이 나와 해당기관으로부터 자료요청이 오더란다. 다소 순진하기도 하고(?) 오기도 나서 계속 쓰는 약을 처방 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계속 진료기록에 대한 요청을 해와 주변 동료들이 말리고 나섰다. 그러면 아예 병원을 내사하러 방문을 온다고. 계속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신을 보고 오는 ‘환자의 사생활보호’라는 큰 명제 앞에 진료비를 정정했다. 외부의 압력이 있다고 해서 쓰던 약을 바꿀 수 없었던 우원장은 약값 때문에 정신과 치료비에 해당하는 비용을 거의 뺄 수 밖에 없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환자를 많이 봐야 그나마 유지가 되겠지만 응급상황이 아니면 예약제로 환자를 만나는 상황에선 그것도 쉽지 않다. 이래저래 어려움은 많지만 대학교수로 재직할 때보다 개원했을 때 더 보람을 느낀다고 하는 우원장. 임상의로서 살아가는 지금 이순간이 참 좋다고 고백한다.

힘 닿는 데까지 인술을 펴고파

경제적인 이유로 시작한 일이 더욱 아니기에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자신의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한다. 요즘은 남편과 함께 새벽 5시에 일어나서 9시까지 산책과 그 외 필요한 운동을 하는 시간을 꼭 가진다고 하는 우원장은 의사로써 가정 바깥에서 바쁜 생활을 해왔지만 가정을 소홀히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가정이 바로서야 사회가 바로 서는 것이라며 일하는 여성들이 일을 이유로 가족의 식사조차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지내는 것을 보면 ‘저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한다. 마지막 이야기를 가정으로 돌리는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어머니 같은 우원장. 그녀가 이제껏 축적해온 전문지식과 어머니로써, 여성으로써 살아온 그 삶이 다시 시작한 제 2의 인생에 하나로 녹아 들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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