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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채집 본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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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봄꽃이 한껏 꽃망울을 터뜨린 동네 뒷산에 등산객 한 무리가 나타났다. 데크가 깔린 등산로는 운동화 한 켤레면 충분하다. 그걸 몰랐던 게다. 그들은 해외 원정에 나선 듯 중등산화를 신고, 스틱까지 들었다. 등에 진 배낭은 왜 그렇게나 큰지. 등산로 입구의 만개한 벚꽃을 마주한 무리는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다. 무리 중 하나가 소리쳤다. “여기 홑잎나물이 있네.” 무리는 우르르 달려들어, 갓 올라온 화살나무 여린 잎을 뜯었다. 무리가 훑고 간 화살나무는 순식간에 연둣빛에서 잿빛으로 바뀌었다. 뜯은 걸 다 합쳐봐야, 데쳐서 무치면 한 접시도 안 될 텐데. 그 적은 걸 각자 가져갔으니 결국 버릴 거다. 옛말에 “부지런한 며느리는 홑잎나물을 세 번 딴다”고 했으니, 화살나무에는 다시 새잎이 돋을 거다.

20만 년 전 등장한 인류(호모 사피엔스)는 수렵과 채집을 호구지책으로 삼았다.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건 1만 년 전 일이다. 그리고 산업혁명은 18세기 들어서야 일어난 일이다. 요컨대 인류는 19만년간 수렵채집사회에서, 9800년간 농경사회에서, 200년간 산업사회에서 살았던 거다. 몸과 뇌리에 19만년간 새긴 것이 쉽게 사라질 수가 없다. 바닷가를 지나다가도 조개나 소라를 보면 일단 줍고 본다. 혹시 더 있나 주변도 살핀다. 산길을 걷다가 밤이나 산딸기를 보면 우선 챙기고 본다. 인류에게 채집은 본능이다. 그러니 홑잎나물을 발견하자마자 아드레날린이 솟구친 등산객 무리를 비난할 일도 아니다. (채집 금지 경고문이 적힌 곳에서라면 물론 얘기가 다르지만.)

가을이면 “공원에서 밤처럼 생긴 열매를 주워다가 삶아 먹고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는 뉴스가 가끔 들린다. 밤과 비슷하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다른 그것, 마로니에(칠엽수) 열매다. 독성이 있다. 봄에도 비슷한 뉴스가 들려오곤 한다. 독초를 산나물로 오인해 먹었다가 탈이 난 경우다. 여로를 원추리로, 박새를 명이나물(산마늘)로, 동의나물을 곰취로, 삿갓나물을 우산나물로 오인하는 일이 잦다고 한다. 후자가 식용이고, 전자는 모두 비슷하게 생긴 독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25건의 봄나물 안전사고로 86명이 치료받았고 3명이 사망했다. “구별이 쉽지 않으므로 채취하지 않는 것이 식중독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게 식약처 조언이다. 본능이 때로는 위험할 수 있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