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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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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기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강기헌 산업1팀 기자

대한상공회의소의 전신은 1884년 설립한 한성상업회의소다. 일제는 한반도 강점을 시작하면서 지방 경제 장악을 하려고 했는데 지방 상업회의소가 그 통로가 됐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 7월 14일 제령 제4호 조선상업회의소령을 공포했다. 이후 경성일본인상업회의소와 한국인들의 경성상업회의소가 통합됐다. 수탈에 나섰던 조선총독부는 통합 조직을 통해 지방경제 동향을 파악하고 일본인의 경제활동을 지원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성상업회의소를 되찾으려는 노력은 독립과 함께 본격화한다. 1946년 조선상공회의소가 설립됐고, 1948년 7월 대한상공회의소로 이름을 바꿨다. ‘대한’이란 명칭은 다소 촌스럽지만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후 1952년 상공회의소법이 제정되면서 대한상의는 법정 단체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서울을 포함해 전국 73개 상공회의소가 활동하고 있다. 상공회의소법에 따르면 대한상의는 상공업에 관한 회원의 의견과 건의 등을 종합·조정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이를 건의함으로써 상공업의 경쟁력 강화와 진흥에 기여함을 설립 목적으로 한다.

대한상의가 1962년부터 경제계를 대표해 매년 초 신년인사회를 여는 건 설립 목적의 연장선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여타 경제단체도 신년회를 따로 열지 않고 대한상의 행사에 참여했다. 대한상의의 상징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다.

역대 대통령은 대한상의 신년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대통령이 대한상의 신년회에 참석하지 않은 건 1984년(전두환·아웅산테러 사건), 2007년(노무현·2006년 4대 그룹 총수 간담회), 2017년(박근혜·탄핵소추로 직무정지)이 유일했다. 이런 관습을 깬 게 문재인 대통령이다. 취임 후 신년회에 불참했다.

그랬던 문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열린 제48회 상공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역대 대통령이 5년 주기로 참석하던 행사다. 3년 전 45회 행사엔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 이어 지난 1일 참모진 회의에서 “경제계 인사 고충을 들어주는 건 당연한 책무”라고 말했다. 상법과 중대재해처벌법 개정과 관련해 목소리를 높인 경제단체의 하소연에 귀를 닫았던 게 문 대통령과 청와대 아닌가. 그게 불과 3개월 전이다. 맥락 없는 파격은 의미도 감동도 없다.

강기헌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