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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폰 26년 만에 역사 속으로…“중장기 관점서 분명한 이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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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LG 윙 [사진 LG전자]

LG 윙 [사진 LG전자]

LG전자 스마트폰이 시장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1995년 ‘화통’ 브랜드로 휴대전화를 처음 선보인 지 26년 만이다. 2000년대 중반 ‘초콜릿’ ‘샤인’ 등 피처폰을 앞세워 세계 3위에 오를 만큼 기세를 떨쳤지만 스마트폰 변화의 흐름을 놓친 타격이 컸다.

베트남 빈 등 외국계와 매각 협상 무산

LG전자는 5일 이사회를 열고 오는 7월 31일자로 스마트폰 사업을 맡은 MC사업본부의 생산 및 판매를 종료한다고 영업정지 공시를 했다. 지난 1월 20일 권봉석 LG전자 사장이 사내 임직원에게 ‘사업 재검토’를 발표한 지 75일 만이다. 그동안 베트남 빈그룹이나 독일 폴크스바겐, 미국 구글과 매각 협상을 했지만 모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LG폰 출시부터 철수까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LG폰 출시부터 철수까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한때 세계 3위…스마트폰 실기가 치명적

LG폰은 1995년 LG정보통신이 개발한 ‘화통’으로 첫선을 보였다. LG정보통신이 2000년 LG전자와 합병한 후 10년 가까이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선두주자로 불렸다. 2005년엔 ‘초콜릿폰’, 2007년엔 ‘프라다폰’이 큰 인기를 끌었다. 2010년 3분기에만 2800만여 대가 팔리며 세계 3위에 올랐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애플이 2007년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스마트폰 열풍’을 주도했으나 이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 늦은 게 치명적이었다. LG는 2010년에서야 첫 스마트폰인 ‘옵티머스’를 출시했다. 이후 ‘G’와 ‘V’ 시리즈, ‘벨벳’, ‘윙’ 등을 선보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피처폰의 영광을 잊지 못한 LG전자가 기술이 아닌 마케팅에 집중한 것이 ‘악수’가 됐다”고 지적했다.

LG의 고민은 깊어졌다. 2015년 2분기 이래 23분기 연속으로, 누적 5조원대 영업적자를 냈지만 스마트폰 사업을 쉽게 접지 못했다. 스마트폰이 가전을 비롯해 전기차·IT 모빌리티의 허브 역할을 해서다. 이번 철수 결정엔 구광모 LG 회장의 결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은 2018년 취임 후 ‘선택과 집중’을 강조해왔다.

스마트폰 특허, 전장사업 등에 활용  

실제로 구 회장은 연료전지와 액정표시장치(LCD), 전자결제 등 적자 사업들에 대해 과감하게 철수를 선언했다. 구 회장 취임 당시에도 스마트폰은 누적 영업적자가 2조8500억원이 넘었다. 그는 결국 권봉석 사장 등 LG전자 경영진과 오랜 논의 끝에 사업 종료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 고위관계자는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결과 사업을 종료하는 것이 중‧장기 관점에서 분명한 전략적 이득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향후 LG전자는 자동차 전장과 인공지능(AI), 로봇 등 미래 신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 회사가 보유한 스마트폰·이동통신 분야의 특허 2만4000여 건, 지난 1월 ‘소비자가전(CES) 2021’에서 주목받은 롤러블 기술 등은 신수종 사업과 연계한다. LG전자 측은 “스마트폰 사업을 종료해도 6세대(6G) 이동통신과 카메라, 소프트웨어 등 핵심 모바일 기술 연구개발은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차세대 TV나 가전, 전장부품, 로봇 등에 필요한 기술이라서다.

LG전자가 2007년 출시한 '프라다폰'. [사진 LG전자]

LG전자가 2007년 출시한 '프라다폰'. [사진 LG전자]

국내 메이커 삼성만 남아…“폰 생태계에 악재”

이로써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국내 업체는 삼성전자만 남게 됐다. 한때 국내 3강을 형성했던 팬택은 2015년 매각됐다. 삼성전자도 시험대에 놓여 있다. 여전히 세계 1위지만 10년을 지켜왔던 ‘20%대 점유율’이 지난해 무너졌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점유율은 19.5%로, 애플(15.5%)과 화웨이(14.4%)에 바짝 추격당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유일한 경쟁자였던 LG전자가 철수하면서 인재 공급이나 연구개발, 부품 공급 등에서 차질을 빚어 ‘한국 폰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다”며 “이는 ‘원톱’인 삼성전자에도 악재”라고 우려했다.

스마트폰 글로벌 점유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스마트폰 글로벌 점유율.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삼성·애플·샤오미가 LG폰 빈자리 노려   

한편 LG전자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사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LG 스마트폰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1.63%에 그쳤다. 다만 국내에서는 삼성전자(64.6%), 애플(25.6%)에 이어 6.4%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1일부터 LG전자의 V50을 반납하고 갤럭시S 시리즈로 갈아타는 소비자에게 7만원의 ‘웃돈’을 주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 수리비와 보험료 10%를 깎아 준다. 지난 2월엔 서울 여의도에 가로수길에 이어 국내 두 번째로 대형매장인 ‘애플스토어’를 열면서 적극적으로 구애에 나섰다. 샤오미는 지난달 출시한 중저가 5G폰인 ‘미10 라이트’의 공시지원금을 대폭 확대해 사실상 ‘공짜폰’으로 판매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LG전자가 중저가폰에서 강한 면모를 보인데다 운영체계(OS)가 같은 안드로이드인 만큼, 삼성전자나 샤오미가 주요한 수혜자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아이폰12 출시 이후 팬층을 확대하고 있는 애플도 만만치 않을 것이란 예측도 있다.

3700명 고용 승계, 제품 AS 4년 유지 

LG전자는 MC사업본부에 소속된 3700여 명의 인력 전원을 다른 부서나 LG마그나·LG에너지솔루션 등 신규 출범하는 계열사에 분산 배치한다는 방침이다. LG폰에 대한 사후서비스(AS)는 불편함 없이 제공한다고 밝혔다. 대개 스마트폰 AS는 OS 업그레이드의 경우 출시 후 2년, 단말기 보수는 4년 정도 유지한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스마트폰사업 철수는) 미래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존 인력의 재배치로 핵심두뇌의 이탈 우려도 적은 만큼 기업가치 상승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현주·김경진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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