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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정의용에 또 사드 항의했다…보도자료선 왜 빠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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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중국이 지난 3일 한ㆍ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문제를 또 제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측 보도자료에서 이례적으로 관련 내용이 빠졌는데, 실제 회담에선 전과 다름 없이 사드 철거를 요청한 것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3일 중국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기 위해 회담 장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3일 중국 샤먼 하이웨호텔에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기 위해 회담 장소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교부 당국자는 5일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나 관련 질문에 “(사드 문제와 관련한)양측의 입장은 2017년 10월 31일 협의 결과를 보면 의견을 같이 하는 부분과 입장 차이를 그냥 두기로 한 부분이 잘 나와있다. 이런 인식과 틀 아래서 이후 계기마다 관련한 의견 교환이 이뤄졌고, (이번에도)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사드 적절 처리하라” 입장 여전  

사드로 인한 한ㆍ중 간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이뤄진 이른바 10ㆍ31 합의에는 “중국 측은 한국에 배치된 사드 체계를 반대한다고 재천명하고, 한국 측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했다”고 명시돼 있다. 이후 중국은 한국과의 회담 때마다 보도자료에 “한ㆍ중 간 민감한 문제를 한국이 적절히 처리하기를 희망한다”는 취지의 문구를 넣어 한국 측에 사드 철거를 요청했다고 확실히 했다.
3일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간 샤먼 회담 뒤 중국이 내놓은 자료에선 ‘민감한 문제’라는 표현 자체가 빠져 눈길을 끌었지만, 공개만 않았을 뿐이지 사드와 관련한 중국 측의 입장은 그대로였던 셈이다. 미ㆍ중 간 갈등 국면 속에 한국을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려 표현상 강약을 조절한 정도로, 한ㆍ중 간 갈등 사안과 관련한 본질적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중국이 한국 보도자료에는 없는 백신 협력, 기술 분야 협력을 회담 결과로 공개한 것도 의도성이 짙어 보인다. 중국이 “양측은 건강코드 상호 인증 시스템을 건립하고, 백신 협력을 전개하기 위한 협조를 강화한다”고 밝혔는데, 외교부 당국자는 관련해 원칙적 수준의 논의가 오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한중 외교장관 회의 주요 내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중 외교장관 회의 주요 내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당국자는 “상호 협의하고 조율하기로 한 것으로, 원칙적 수준의 소통이 있었다. (백신 문제는)국내 절차가 요구되는 부분”이라며 “코로나19 상황에서 양국 간 방역 협력이 계속 이뤄졌고, 이제 새로운 협력 국면이 백신 분야이니 그런 차원에서 협력을 논의하겠다는 언급이 있었다”고 말했다.

원칙적 논의까지 공개, 한국 당기기

“5Gㆍ빅데이터ㆍ녹색경제ㆍ인공지능ㆍ집적회로ㆍ신에너지ㆍ바이오 산업 등의 영역에서 한국과 협력을 중점적으로 강화하기를 희망한다”는 중국 발표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경제협력 논의 중 지역 간 경협이 필요하다는 개괄적 이야기를 하면서 중국 측이 목록 중 하나로 언급한 것으로, 관련한 논의가 있지는 않았다”며 “중국은 그간 비공식ㆍ공식적으로 이런 분야들에서 한국과 협력하고 싶다고 밝혀왔다”고 말했다.
중국이 보도자료에서 언급한 기술 협력 분야는 모두 미국과 첨예하게 맞붙는 이슈다. 미국은 지난 2월 발효한 행정명령을 통해 반도체 공급망 관련 조사를 실시 중이고, 한ㆍ중 외교장관회담 직전 미국에서 열린 한ㆍ미ㆍ일 안보실장 협의에서도 이를 의제로 올렸다. 중국이 구체적 논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첨단 기술 협력을 공개적으로 강조한 것은 갈등 이슈에서 한국이 중국 편에 서도록 선제적으로 프레임을 짜는 것일 수 있다.

“한국 올림픽 대표단 환영” 기정사실화도    

중국이 “한국이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한 것을 환영한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읽힌다. 미국 내에서는 홍콩과 신장 인권 문제 등을 놓고 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데, 한국은 이미 참여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갈라치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외교부 당국자는 “아직 대표단 파견까지 언급할 상황은 아니고, 통상적으로 동계 올림픽 참가에 대한 원칙적인 지지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2024년 청소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하는데, 그에 대해 중국도 지지한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평가 교환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부터),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3자회의에서 함께 걸어가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오른쪽부터),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이 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인근 해군사관학교에서 열린 한미일 안보실장 3자회의에서 함께 걸어가며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 관련 내용이 한국 보도자료에만 등장하고 중국 측 발표에선 빠진 데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는 국내에서 가장 관심을 갖는 사안이라 포함한 것이고, 중국은 공감대를 재확인한 부분이라 포함을 하지 않은 것으로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이미 수차례 같은 내용을 확인했기 때문에 중국이 굳이 발표 자료에 넣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중국은 회담 중 발언이 아닌 정부 공식 발표를 통해 시 주석의 방한 사실을 확인하지는 않고 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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