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도 40가지로 '맞춤 진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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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단 한가운데 멕시코만을 끼고 있는 텍사스주 휴스턴. 세계 최대,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암전문 병원 MD 앤더슨 암센터가 있는 곳이다. 6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병원은 1만5000명의 의료진과 지원인력들이 연간 6만5000명의 환자를 돌본다.

이 중 약 10%가 명성을 듣고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환자들이다.이 병원의 강점은 환자 중심의 협진과 다양한 서비스. 협진은 병리과·종양내과·방사선과·외과 등 전문의들이 환자를 중심으로 모여 최선의 치료법을 찾는 시스템. 유방암의 경우 약 40가지로 병을 세분화해 환자에 맞는 처방을 내린다. 세계 최고의 의술과 서비스로 명성을 얻고 있는 MD앤더슨 암센터를 취재했다.

◆환자 가족을 위한 시설도 일류=환자는 의료진의 보호를 받지만 가족과 보호자들은 방치되기 일쑤다. 그러나 이 병원은 다르다. 보호자의 피로를 풀어줄 공간이 곳곳에 있다. 휴게실에는 소파가 여러 개 준비돼 있다. 한잠 잘 수 있도록 조명도 어둡게 배려했다. 대형 구내식당이 있지만 환자 가족을 위한 부엌이 따로 마련돼 있다. 냉장고와 전자레인지.칼.접시에 식탁까지 잘 꾸며져 마치 콘도 같다. 재료만 준비해 오면 바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 음식을 다른 환자 가족들과 나눠 먹으며 병이나 환자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로도 활용된다.

무료로 신문을 제공하며, 도서관은 여느 공공 도서관 못지않을 정도로 책이 가득하다. 책은 물론 CD.DVD.비디오도 빌려준다. 병원을 찾은 사람이면 누구나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토요일 오후에는 환자와 가족들이 함께 참여하는 빙고게임이 열린다. 병실을 환자가 좋아하는 그림.사진으로 꾸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경주용 자동차게임.농구게임.당구장까지 갖춘 오락실도 있다. 스낵과 팝콘은 기본이다.

◆간이학교도 운영=장기 입원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마련한 교실이다. 초등학생과 중.고생을 위한 반이 두 개 있다. 병원에서 고용한 교사가 6명이며 자원봉사로 일하는 인근 지역 교사들도 여럿 있다. 그림을 좋아하는 어린 환자들은 매주 화요일을 손꼽아 기다린다. 회화는 물론 종이로 인형 만들기.소조 등 미술 수업이 있는 날이다. 복도 곳곳에 걸린 아이들의 그림은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이들이 그린 그림은 크리스마스 카드로 만들어져 병원에 큰 수입을 안겨 주기도 한다. 지난 30년간 이렇게 번 돈이 2000만 달러(약 200억원)에 달한다. 이 돈은 병원의 자원봉사자 프로그램 운영에 쓰이거나 인근 노인.아동복지시설에 전달되곤 한다.

환자들은 외부 캠프에도 참가하는데 이때 형제들의 참여도 허용한다. 입원한 상태지만 형제들과 우애를 다질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서비스도 치료의 일환=병원 입구에 들어서면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먼저 반긴다. 환자는 물론 보호자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준다. 일반적으로 암병동은 애완동물 출입을 금지한다.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들에게 병균을 옮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병원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애완견과 놀 수 있도록 배려한다. 정서안정에 도움을 주고, 재활치료의 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회복단계의 환자들은 한 달에 두 번씩 애완견과 놀 수 있다.

재활센터의 작은 방엔 절삭기와 망치 등 온갖 공구가 구비돼 있다. 이 역시 환자를 위한 것이다. 화장실이나 침대.부엌도 일반 가정과 똑같이 꾸며 놓고 사회 적응 훈련시설로 쓴다.

암에 관한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암도서관도 눈길을 끈다. 환자들이 자신의 병을 정확히 알고 스스로 치료과정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운영한다. 병원 내 국제센터는 세계 각국 환자들을 지원한다. 항공권을 예약해 주고 인근 호텔까지 잡아준다. 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독어 등 12개 언어의 통역서비스도 제공한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현재 병원에 등록돼 있는 자원봉사자만 1500명. 웬만한 궂은 일은 이들이 도맡는다. 이발소나 미용실도 운영한다. 가발을 빌려주는 것도 모두 공짜다. 회복단계에 있거나 완치된 환자들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경우도 흔하다.

뇌종양으로 4년간 여러 차례 대수술을 받았던 밥 블럼(57)은 "암을 극복한 동료들과 더불어 다른 환자들을 도울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이라고 말했다. 암을 이긴 600여 명의 회원들은 매년 9월 이 병원에서 암예방을 위한 세미나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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