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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미사일 쏜 다음날, 천안함 추모식 간 文 "대화 노력할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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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재개된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첫 반응은 또다시 ‘대화’였다. 11년이나 지났지만 천안함 폭침(爆沈)에 대해선 ‘북한의 소행’이라는 문 대통령의 명확한 표현도 나오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천자봉함·노적봉함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천자봉함·노적봉함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26일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날 기념식에서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국민 여러분의 우려가 크신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지금은 남ㆍ북ㆍ미 모두가 대화를 이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대화의 분위기에 어려움을 주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전날 오전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발사한지 하루가 넘게 지나 나온 첫 육성 메시지다.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을 통해 “신형전술유도탄 시험에 성공했다”며 탄도미사일 발사를 시인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25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유엔 결의 1718호 위반”이라며 탄도미사일 도발로 규정하고, 유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소집을 요청한 상태다.

 서해수호의날은 제2연평해전(2002년 6월 29일)과 천안함 피격(2010년 3월 26일), 연평도 포격 도발(2010년 11월 23일)등 북한의 도발에 의해 순국한 장병 55인을 기리는 날이다.

이런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이 사거리와 무관하게 유엔의 제재 대상이 되는 ‘탄도미사일’이란 표현을 꺼내지 않고, 탄도미사일 발사가 '북한의 도발'임을 강조하지 않은 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북한 노동신문이 26일 전날 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이 26일 전날 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문 대통령은 대신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준수하면서도 우리 자신을 방어하기에 충분한 세계 최고 수준의 미사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며 “압도적인 힘”을 강조해 말했다.

해군에 대해서도 “3000톤급 잠수함 사업을 2024년 마무리하고 ‘더욱 발전된 잠수함 사업’으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강력한 수중전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느 때보다 강한 국방력과 굳건한 한ㆍ미동맹으로 어떤 도발도 물리칠 수 있는 확고한 안보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께 자신있게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군사력의 우위를 내세운 대북 메시지는 지난해 시험발사에 성공한 현무4 미사일과 전날 실험을 마친 1단계 로켓 추진체, 그리고 핵추진잠수함을 염두에 둔 말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그러나 ‘현무4’나 ‘핵추진잠수함’ 등 전력의 명칭은 밝히지 않았는데, 이 역시 정치권에선 "북한을 의식한 것"이란 말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취임후 처음 참석했던 지난해 기념식에서는 아예 ‘북한’이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올해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난 천안함 폭침의 원인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문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과 연평도 포격에 대해선 “불의의 피격” 등의 표현으로 북한의 소행임을 적시했다. 반면 천안함과 관련해선 “2023년 서해를 누빌 신형 호위함의 이름을 천안함으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천안함 역시 영웅들과 생존 장병들의 투혼을 담아 찬란하게 부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천안함의 부활을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염원하고 성원해오신 유가족과 최원일 전 함장을 비롯한 천안함 생존 장병들께 위로와 함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천자봉함·노적봉함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마친 뒤 천안함 46용사 추모비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천자봉함·노적봉함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마친 뒤 천안함 46용사 추모비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이어 “서해 영웅들이 이룬 애국의 역사는 모두를 위한 통합의 유산이 되어야 한다”며 천안함을 둘러싼 비판 여론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기념식에서는 천안함 피격으로 희생된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가 김정숙 여사 바로 옆에 앉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윤 여사는 지난해 현충탑에 헌화하는 문 대통령에게 다가가 “아직 ‘북한 짓’이라고 진실로 말한 적이 없다. 늙은이의 한을 풀어달라”며 천안함 폭침에 대한 입장을 요구했던 인사다. 문 대통령은 당시 “정부의 입장은 같다”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윤 여사는 기념식 내내 김정숙 여사와 대화를 나눴지만,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천자봉함·노적봉함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있다. 맨 오른쪽은 '천안함 46용사'의 한 명인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6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천자봉함·노적봉함에서 열린 제6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있다. 맨 오른쪽은 '천안함 46용사'의 한 명인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 여사. 연합뉴스

기념식이 끝난 뒤 문 대통령은 윤 여사를 포함한 천안함 유가족들과 추모비를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김록현 서해수호관장에게 천안함 피격 상황을 보고받았다고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밝혔다. 문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 “당시의 사건 경과는 너무도 생생하게 잘 기억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청와대 브리핑에는 ‘폭침’이나 ‘북한’ 등의 표현은 나오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한 건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다. 2018년엔 베트남 국빈방문으로, 2019년엔 대구 경제투어 일정으로 불참했다. 이를 놓고 야권에선 "지난해엔 총선, 올해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정치적 행보"라고 의심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를 이유로 정치인들의 참석을 최소화했다가 기념식 직전 참석 범위를 확대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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