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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에 손배소 이긴 납북자…"임종석의 경문협 대신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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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전경. [뉴스1]

서울중앙지법 전경. [뉴스1]

6ㆍ25전쟁 때 북한에 끌려간 납북자 후손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지난해 국군포로에 이어 전쟁 중 민간인 납치에 관해서도 법원이 북한의 불법행위를 인정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5000만원 위자료 배상 판결

서울중앙지법 민사71단독 김영수 판사는 25일 납북자 최모씨의 딸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김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5000만원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들이 공동으로 원고에게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아들 최씨가 청구한 위자료를 전액 인용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납북자 최씨가 실종된 1950년 10월 1일부터 2021년 1월 27일까지 연 5%를, 그 이후부터는 12%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도 했다. 70여 년 간의 지연이자를 합산하면 총 2억원이 넘는 위자료를 북측이 지급해야 한다고 한 셈이다. 다만 재판부는 판결 이유에 대해선 법정에서 상세히 설시하지 않았다.

이날 판결로 국군포로에 이어 민간인 납북자에 대한 북한의 불법행위도 법원이 받아들인 게 됐다. 지난해 7월 6·25 전쟁의 국군포로였던 한재복·노사홍씨가 김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는 각 2100만원씩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은 “북한은 헌법 체계상 국가로 볼 수 없어 대한민국의 재판권 행사가 가능하며, 북한의 불법행위도 인정된다”고 설시했다.

민간인 납북피해자 소송은 최씨 외에도 역사학자 위당 정인보 선생과 국내 1호 변호사인 홍재기 변호사,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 등 후손 13명이 3억 4000여만원을 청구한 사건이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최씨의 청구액 5000만원이 전액 인용됐다는 건 재판부가 그만큼 납북 피해를 위중하게 봤다는 얘기도 된다.

지난 2009년 2월 경기도 파주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납북자가족모임과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북한돈과 함께 대북전단을 날려보내는 모습. 박종근 기자

지난 2009년 2월 경기도 파주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납북자가족모임과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북한돈과 함께 대북전단을 날려보내는 모습. 박종근 기자

재판에서 변호인들은 “북한의 납치 행위는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상의 강제 실종으로 분류되는 반인도 범죄”라며 “우리 민법상 불법행위(제750조)에도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김태훈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상임대표는 “최씨의 위자료를 지급하기 위해 국내에 있는 북측 채권으로 볼 수 있는 사단법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보유한 저작권료에 대해 채권 추심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문협은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표이사로 있는 재단이다.

피해자 측 “임종석 대표 경문협, 북한 방송 저작료 내놔야”

지난해 6월 서울 성동구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서 열린 9기 이사회 1차 회의에 앞서 재단 이사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참석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뉴시스]

지난해 6월 서울 성동구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에서 열린 9기 이사회 1차 회의에 앞서 재단 이사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참석자들과 대화하는 모습. [뉴시스]

앞서 지난해 7월 승소한 국군포로 원고들은 이미 경문협을 상대로 8599만원의 추심금 소송을 경문협 관할인 서울동부지법에 제기한 상태다. 서울중앙지법이 피해자 측 승소 판결에 따라 경문협에 채권 압류 및 추심 명령을 내렸는데도, 경문협 측이 돈을 주지 않자 재차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지난해 8월 서울중앙지법의 압류 결정문에는 채무자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대표자 국무위원장 김정은’으로 적혔고, 제3채무자에는 ‘경문협과 대표이사 임종석’이 적시됐다.

법원은 “북한과 김 위원장이 경문협에서 받아야 할 채권 약 1억 9252만원 상당을 압류하고, 경문협은 김 위원장에게 지급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 압류 대상인 1억 9252만원은 2017년 한 해 동안 경문협이 국내에서 조선중앙TV 등 북한 저작물을 이용한 국내 언론사에서 걷은 사용료라고 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해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 소식을 1~11면에 걸쳐 보도한 모습. [뉴스1, 노동신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지난해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 소식을 1~11면에 걸쳐 보도한 모습. [뉴스1, 노동신문]

법원과 변호인단에 따르면 경문협은 2005년 12월 북한 정부 내 저작권사무국과 한국 내에서 사용되는 조선중앙TV 영상 저작권료를 받는 저작권 협약을 체결했다. 통일부 허가에 따라 2005~2008년 저작권료를 달러 등으로 교환해 북측에 송금해왔다.

그러던 중 2008년 7월 금강산에서 관광객 박왕자씨가 피격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됐고, 5·24 대북제재 조치 시행 등으로 송금이 중단됐다. 이에 따라 경문협은 법원에 저작권료를 공탁해왔다고 한다.

납북 피해자 측은 “매년 공탁금이 쌓여가고 있는 북한 자산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다만 경문협 측은 “북한 정부에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중앙TV 등 당사자에게 지급할 채권이라 추심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이유정·이수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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