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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 파운드리에 22조 투자…‘고객이 적으로’ 삼성 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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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팻 갤싱어 인텔 CEO가 23일(현지시간) 온라인 글로벌 미디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인텔]

팻 갤싱어 인텔 CEO가 23일(현지시간) 온라인 글로벌 미디어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인텔]

“인텔이 돌아왔다.”(23일 팻 갤싱어 인텔 최고경영자)

인텔, 파운드리 2년만에 재진출 #“아마존·MS·애플도 고객으로 영입” #‘반도체 부활’ 바이든 후원도 든든 #삼성, 1위 TSMC 추격전에 새 위협

인텔이 시장의 예상을 깨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 진출을 전격 선언했다. 파운드리 시장 세계 1위인 대만 TSMC를 힘겹게 추격 중인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경쟁자가 등장한 셈이다. 갤싱어 인텔 CEO는 23일 온라인 미디어 브리핑에서 “반도체 설계에 집중하고 생산은 외주에 맡기는 업체와 협력해 이들이 설계한 반도체를 대신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파운드리 회사 이름은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다. 갤싱어는 “최소 200억 달러(약 22조6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신규 반도체 제조공장(팹) 두 곳을 세우겠다”며 “새로운 파운드리 서비스 구축을 위해 앞으로도 수백억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겔싱어가 발표한 사업계획의 이름은 ‘IDM(종합반도체) 2.0’이다. 미국 경영전문지 포브스는 “인텔이 AMD, 엔비디아와 같은 반도체 리더들이 포기한 IDM을 유지할 것을 분명히 했다”며 “인텔이 대규모 제조 시설을 매각할 것이란 소문을 일축했다”고 평가했다. IDM은 반도체 설계만 하는 팹리스, 외주 제작만 하는 파운드리와 달리,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반도체 회사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인텔은 지난 2016년 파운드리 사업에 도전했다가 2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럼에도 재진출을 선언한 건 파운드리 시장의 성장성 때문이다. 겔싱어는 “파운드리 사업은 2025년까지 1000억 달러(약 113조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파운드리 반도체 시장점유율

세계 파운드리 반도체 시장점유율

반도체업계에선 인텔의 도전으로 파운드리 시장이 TSMC와 삼성전자, 인텔의 ‘3강 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의 점유율은 56%로 예상된다. 압도적 1위다. 그 뒤를 삼성전자(18%)가 추격하고 있다. 당장은 TSMC·삼성과 인텔의 기술력 차이가 크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인텔이 설계를 잘하는 강점을 살릴 수도 있지만, 현재 인텔의 공정기술은 삼성전자보다 두 세대 정도 뒤처져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술력과 자금력을 갖춘 인텔은 장기적으론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다. 특히 인텔의 파운드리 진입은 TSMC보다 삼성전자에 타격을 줄 수 있다. TSMC를 따라잡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경쟁자의 추격까지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먹거리 자체도 줄어든다. 인텔은 파운드리 시장에선 대형 발주처다. 인텔이 자사 물량만 소화해도 삼성전자로선 수주할 수 있는 물량이 줄어들게 된다.

‘반도체 왕국’ 인텔 역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반도체 왕국’ 인텔 역사.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겔싱어는 이날 TSMC와 삼성에 견제구를 날렸다. 그는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는 모바일용 칩 등을 다양하게 제조할 것”이라며 “고객사로 아마존과 구글, MS, 퀄컴, 애플 등을 끌어올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 TSMC와 삼성전자의 주요 고객이다. 더욱이 인텔 뒤에는 반도체 부활을 외치는 미국 정부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행정부의 최우선 사안”이라며 “미국 내 반도체 생산 확대를 위한 추가 정부 지원과 새로운 정책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부문이 대폭 성장하기 위해서는 TSMC를 앞서는 3나노 기술과 수율·원가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최현주·이승호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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