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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심검문 시 경찰관 정복 입었어도 경찰 신분증 제시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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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검문. (기사 내용과 무관한 이미지.) 연합뉴스

경찰 검문. (기사 내용과 무관한 이미지.)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24일 경찰관이 정복을 입고 불심검문을 할 때에도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불심검문 하는 경찰관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는 진정에 대한 판단이다.

정복 입은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의무 논란

인권위에 따르면 진정인은 지난해 8월 10일 오전 0시 30분쯤 자신의 근무지인 서울의 한 버스터미널 안 가게에서 경찰(피진정인)로부터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피진정인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고 소속과 성명 등도 밝히지 않은 채 다짜고짜 휴대전화 사진을 들이밀면서 “이 사람 본인 맞으시죠?”라고 불심검문했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은 전날 이 터미널에서 발생한 ‘강간미수 및 준강제추행’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피진정인은 “진정인의 체격과 얼굴형태, 헤어스타일 등을 봤을 때 영상 속 인물과 부합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경찰 제복을 입은 상태로 진정인에게 접근했다”며 “검문 시 본인의 소속과 성명을 밝힌 후 진정인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를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인권위,“정복 입었더라도 신분증 제시해야”

진정인은 “피진정인이 사진 속 인물과 자신의 헤어스타일이 비슷하다며 왼쪽 귀 아래 부분을 펜으로 건드리는 등 신체의 자유와 인격권을 침해했다”고도 주장했다.이에 대해 해당 경찰 직원은 “사실이 아니다. 진정인은 당시 감정이 격해져 있었는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헤어스타일에 대해 불필요한 신체접촉까지 하며 진정인을 자극시킬 이유가 없었다”고 맞섰다.

인권위는 신체의 자유와 인격권을 침해했다는 진정인의 주장은 기각하면서도 경찰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인권위는 “‘경찰관직무집행법’은 경찰관이 불심검문을 할 때 상대방에게 자신의 신분을 표시하는 증표, 즉 국가경찰공무원증 제시하면서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그 목적과 이유를 설명할 것을 규정한다”고 판단 이유를 설명했다.

인권위는 다만 “피진정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며 “경찰서장에게 주의를 촉구하도록 하는 한편, 소속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불심검문 시 정복을 착용한 경우에도 신분증을 제시하도록 직무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례보다 엄격한 결정

인권위의 이번 결정은 경찰관의 신분증 제시 의무를 법원의 판례보다 더 엄격하게 본 것이다. 2004년 대법원 판례는 ‘정복을 입은 경찰관의 경우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아도 자신의 소속과 성명을 밝히고 검문 목적과 이유를 설명했다면 그 검문은 정당하다고 봐야한다’고 판시했다.

인권위는 이 판례에 대해서도 “공무집행방해죄 성립에 있어 경찰관이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공무집행의 위법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일 뿐 신분증 제시가 필요 없다는 판단이 아니다”며 “정복을 착용하고 소속과 성명을 밝히면 신분증 제시 의무는 없다고 인정할 경우 경찰관직무집행법 주요 부분이 사실상 사문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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