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얽힌 과학적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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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술자리가 많은 때다. 덩달아 폭탄주에 곤욕을 치르는 사람도 많다. 몇년 전 국회 청문회에 나온 한 증인이 양주를 그냥 마시면 독해 맥주에 넣어 먹는다고 말해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폭탄주는 정말 양주를 순하게 해주는 것일까. 알코올 도수로 보면 분명 순해진다. 폭탄주의 알코올 도수는 혼합하는 비율에 따라 다르지만 10도 내외다. 대부분 양주의 알코올 도수는 40도,맥주는 4.5도. 보통 폭탄주를 만드는 맥주잔은 225㏄, 양주잔은 25㏄다. 맥주잔에 맥주를 150㏄ 채우고 양주 한잔을 넣으면 8부 정도 찬 폭탄주가 만들어진다. 그러면 알코올 도수는 10도가 된다. 양주를 작은 잔에 그냥 마시면 40도짜리지만 폭탄주로 만들면 9도의 '순한 술'을 마시게 되는 셈이다.

서울대 의대 약리학교실 장인진 교수는 "폭탄주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독주에 비해 식도와 위 점막에 미치는 영향은 훨씬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통 소독에 사용하는 알코올의 순도는 70도다. 이 정도면 세균의 세포 등을 파괴해 죽게 만든다. 문제는 식도나 위 점막 등도 도수가 높은 알코올에는 약하다는 것이다. 중국에서 고급술로 통하는 알코올 도수 60도 내외의 술은 소화기 계통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그렇다고 폭탄주가 그냥 마시는 양주에 비해 간에 무리를 덜 주는 것은 아니다. 즉, 간독성은 차이가 없다. 장 교수는 "간에 미치는 악영향은 마신 알코올의 절대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폭탄주로 마시나 그냥 양주로 마시나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폭탄주는 왜 빨리 취하는 걸까.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이정권 교수는 "맥주에 들어 있는 탄산가스가 알코올의 흡수를 촉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술도 자주 마시면 는다는 속설이 있다.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술을 매일 2주 정도 마시면 간의 알코올 분해 능력이 30% 정도 증가한다. 몸의 유전자가 '이 사람에게는 알코올 분해 효소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해 적응하는 결과다. 즉, 필요에 의해 알코올 분해 효소를 많이 만드는 것이다.

또 술을 마신 다음날 아침에는 속이 쓰리고 메슥거려도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게 주당들의 경험담이다. 이 역시 과학적으로 보면 일리가 있다. 이 교수는 "알코올이 포도당 합성을 방해하기 때문에 혈당치가 일시적으로 낮아진다"며 "신체는 이를 마치 밥을 한끼 굶은 것으로 인식한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안주 없이 술만 지나치게 마신 경우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술로 인한 일시적인 저혈당 현상은 건강한 사람의 경우 정상적으로 식사하면 금방 회복된다는 것이 의사들의 말이다.

낮술이나 해장술에 더 취기가 오른다는 사람이 많다. 이는 신체 리듬의 영향 때문이다. 시간대에 따라 몸의 상태가 다르고, 역시 알코올 분해 효소의 분비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혈압은 밤에는 낮고, 오후에는 높으며, 성장호르몬의 혈중 농도는 밤에 높고, 낮에 낮다. 즉, 낮술에 취기가 빨리 오르는 사람은 낮에 알코올 분해 효소가 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치사량을 결정하는 동물 실험에서 시간대에 따라 필요한 독극물의 양이 두배나 차이가 나는 것도 신체 리듬의 영향이다.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 갈증이 많이 나는 것은 술을 많이 마신 만큼 소변이나 땀 등으로 미네랄 같은 각종 전해질이 체외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물보다 전해질 스포츠 음료 등을 마시면 갈증을 빨리 풀 수 있다.

***폭탄주, 알고 보니…

-양주 한잔(알코올 40도)+맥주 3분의 2잔(알코올 4.5도)=알코올 도수 10도인 폭탄주

-식도와 위점막 자극:양주↑ 폭탄주↓

-간 독성:양주든 폭탄주든 상관없이 마신 알코올 양에 비례

-취기:폭탄주가 양주보다 맥주의 탄산가스 때문에 더 빨리 취함

-음주 다음날 아침 허기:알코올이 혈당을 낮춰 한끼 굶은 듯이 느낌

-알코올 분해 효소:2주간 계속 술을 마시면 간의 알코올 분해능력 30%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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